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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09. 2024

어리석음이 나를 잠시 위로하네

조용한 아침 버스, 창가에 앉은 한 남자가 아니 그의 휴대폰이 시끄럽습니다. 무슨 퀴즈가 아홉 개째 나오다가 윤수일의 아파트까지 이릅니다. 그는 웃고 휴대폰은 소란스러워요. 째려보다가 포기하다가 몇 정거장이나 지날 무렵, 깨닫습니다. 소리의 근원은 그의 휴대폰이 아니라 그의 머리 위 버스 스피커라는 것을요. 제 위의 스피커는 고장이었나 봅니다. 그는 고요히 일어나 고요히 내리고 스피커는 여전히 떠들고 이런 식으로 오해하며 미워하고, 그것이 오해임을 모르는 채 끝난 경우도 많겠습니다.


루미시집을 조금 더 읽어볼까요. (13세기 신비주의 시인인 그녀는 시성(詩聖)으로 불리는데요.)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적이다.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가 공작새의 적이다. 아! 왕을 죽인 것은 왕의 넘치는 위엄이었다. 나는 사냥꾼의 표적이 된 사슴. 사향을 위해 피를 흘리네. 나는 사막의 작은 여우. 털을 위해 나의 목을 베네. 나는 한 마리의 코끼리. 상아를 위해 피를 흘리네. 내가 가진 아름다움이 나를 파괴하네. 그들은 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도 모르네. 오늘은 나에게 있지만, 내일은 그에게 있는 것. 또 누군가의 피가 이처럼 흐를 것인가?"


그의 시와 반대로 해볼까요.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위로가 된다고요. 버스에서 휴대폰을 소리 높여 듣는 자를 미워하는 마음의 배후에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는데요. 어리석음은 결국 드러나고 그것이 나를 염오 하게 만드니까요. 어젠 씀바귀가 지천이었는데 오늘은 개망초가 허리까지 자랍니다. 길이 없던 곳에 무단 보행하는 걸음이 이어져 이내 길이 되었습니다. 이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길게 돌아야 해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실은 저도 이 길의 포석을 다졌으니까요. 그위로 대합조개가 부서진 채 박혀있습니다. 미래의 화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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