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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17. 2024

밟아서 으깨는 방앗간

베란다의 트레드밀을 버리고서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처음에는 커다란 사이즈와 단단한 구성에 만족했지만 바로 그 점이 그것의 단점이 되어버렸다. 시야를 가려버리고, 게 다리 통행만을 허락하니 달리는 잠시는 괜찮지만 달리지 않는 모든 시간 장애물이었다. 별로 달리지도 않으면서 언젠가 달릴 거라는 말로 반대하는 의견들을 꼬드기고 설득하여 버리고 나니 정말 좋았다. 다시는 큰 가구를 들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버릴 것들을 솎아내는 일은 늘 진행형인데 문제는 끝없이 자가 증식하는 것들이다. 책이라거나 책이라거나 책이라거나... 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트레드밀은 죄수들의 형벌 장치로 처음 만들었다는데 Treadmill, 밟아서 으깬다는 tread와 방앗간이라는 mill의 정직한 합성어라니. 계단을 밟아 원통을 돌리면 물을 퍼올리거나 옥수수를 빻아 가루로 만들었는데 별 이유 없이 벌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원통을 굴리라고 할 때도 많았다고. 하루 여섯 시간 트레드밀에 오른 죄수들은 얼마나 건강해졌을까 싶지만 부실한 영양에 과도한 운동이 몸에 해가 되었다니.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부실하게 될까, 읽지 않고 쓰기만 하면 부실하게 될까. 누군가 치열하게 쓴다는 말을 들으면 뭘 얼마나 했길래 그런 말을 쓸까, 한 번 꼬고 보게 된다. 부러워서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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