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May 20. 2024

작약 일대기

5월에는 작약을 사야지, 다들 나에게 작약을 선물해 주라 소리치고는 받았습니다. 연분홍 작약은 참 예뻤어요. 그게 시들자마자 코랄 빛 작약을 주문했습니다. 동네 화원에는 없다 해서 인터넷 주문을요. 온다는 날, 왔다는 문자,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박스 속에서 시들어 죽는 건 아닌지 불안불안, 뛰어갔지요. 대형박스 속에 신문지 겹이불 속에 망사 커버를 쓴 봉오리는 다섯 개. 거의 알처럼 보이네요. 화병에 물을 담고 줄기를 비스듬히 자르고 꽂는데 조금씩 벌어져요. 보고 있는 중에도 벌어지는 게 느껴져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영화 속에서 희귀한 난이 피는 밤, 그 순간을 보려는 파티 장면이 나오죠. 그 마음 이해가 되었어요. 봉오리에서 만개까지 숨을 참고 보고만 있어도 열락,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참았기에 물에 닿자마자 피어요. 얼마나 급한 생의 충동인가요. 예쁘고 안쓰럽고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씻고 나오니 꽃은 벌써 시드는 분위기입니다. 가장자리 꽃잎 뒷면은 짙어지며 말라요.


그 꽃이 오던 날 흰 작약도 선물 받았습니다. 꽃 싫어, 외쳤던 저였는데 순식간에 열혈 팬이 되었네요. 피어 죽어가는 걸 견딜 수 없었는데요. 피어나는 것을 사랑한다면 그 이후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닿았어요. 실은 몹시 좋아하면서 좋아하지 않으려고 그랬어요. 화병의 다섯 송이, 작은 병의 한 송이가 얼마나 버텨주려나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한의 삶을 산다는 것, 부분적으로는 살아있고 부분적으로는 시들어가다는 점에서 모두는 꽃과 같네요. 반대로 할까요. 시들어가지만 살아있다고, 시한 속에서의 영원이라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밟아서 으깨는 방앗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