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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17. 2024

위안은 위약일까

감기몸살일 뿐인데 맥을 못 추네요. 얼른 퇴근하고 싶은 출근길입니다. 옆자리의 남자분은 휴대폰을 보며 명상 중이십니다. 저 손의 자세와 깊고 고요한 호흡으로 추측합니다. 남이 기침하면, 감기라고 말하면 쉬어, 쉬어야 해, 물 많이 먹고 많이 자고. 어서 조퇴를 해, 소리치는데 정작 스스로는 그러질 못 합니다. 아프다는 걸 모르며 앓기도 했는데 요번엔 예민하게 알아차렸어요. 그렇지만 감기몸살은 병도 아니지요. 일주일이나 7일이면(^^) 저절로 낫는다니까요.


담장에 만개한 장미에서 아무 냄새가 안 나서 왜일까 했는데 코가 막혔던 모양입니다. 작약을 주문했어요. 꽃 들이는 거 싫어하는데(죽는 거 싫어서요) 5월 작약은 참을 수가 없네요. 작은 알처럼 생긴 것이 열리며 만들어내는 모습은 제게 거의 꽃의 화엄 같습니다. 좋아서 보고 또 보고 향기를 맡아요. 피어날 때도 시들 때에도 그것이 작약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엄마는 가을 국화를 좋아하셨는데요. 그게 왜 좋은지 몰랐던 마음을 비웃게 됩니다. 뭘 몰라도 한참 몰랐어요.


작약은 색마다 향이 다른가요? 연핑크 작약에서는 흐릿하고 연한 분 향기가 났어요. 잡고 싶지만 절대 잡을 수 없는 그런 향이요. 새로 오는 꽃은 코랄인데 향기가 다를지 궁금합니다. 코가 뻥 뚫려서 꽃 향기를 실컷 맡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고통에 압도되어 뭔가 찾으러 다니지만 좋은 책, 좋은 영상들은 잠시 감기약 같습니다. 힐러들은 구원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기꾼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맞는 말만 하는데 조화처럼 느껴질 때면 자각합니다. 내 문제 내가 해결해야지 왜 먼 길을 돌아가나요. 단번에 해결되는 문제란 단번에 낫게 해 준다는 감기약처럼 부작용을 수반할 테니까요. 위안은 위약, 외부에 있는 것이 내부에 있는 것을 어떻게 낫게 하겠어요. 그나마 알아차린다는 것, 그건 다행입니다.  아, 위약의 명징한 효과도 있지요. 위안이 정말 힘이 될 때도 있네요.


먹으나마나라는 감기약을 먹었더니 둥둥 떠오르고 어지럽기 시작이네요. 약 따위 기대지 말고 담대하게 앓고 나아져야겠어요. 옆자리 남자가 일어섭니다. 이런, 화면 속 영상은 드라마 하이드로군요. 명상이 아니었나 봅니다. 너무 센 약을 먹었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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