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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15. 2024

마음의 귀신

지귀(志鬼)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신라 시대 선덕여왕을 흠모해 상사병을 앓는 지귀, 그 소식을 들은 선덕여왕은 자비심이 들어 절을 방문하며 지귀를 부르는데 불공을 드리는 여왕을 기다리던 그는 깜빡 잠이 들어버린다. 여왕은 지귀의 가슴 위에 금팔찌를 놓아두고는 궁으로 돌아가고 잠에서 깨어 이 사실을 깨달은 그는 미쳐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 탑도 절도 거리도 세상도 불살라 버린다는데.      

여왕님은 불공을 얼마나 오래 드리셨던 걸까. 좀 짧게 하시지. 지귀는 탑에 기대어 기다렸다는데 어쩌다 그리 깊이 잠들어 버린 걸까. 누가 좀 깨워주지. 일어나지 못한다면 물이라도 끼얹어주지. 병을 앓을 정도라는 걸 다 알았으면서 눈앞의 여왕을 못 보게 만들다니 민심도 참 얄궂다. 깨우지 말라고 여왕이 명하신 거라면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진심의 열렬함을 다 아시면서 잠든 얼굴만 보고 가시다니요. 지귀는 스스로 불타오르며 멸망으로 향한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말릴 수 없는 일이었겠다.


사랑의 원형은 뜨거운 것,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것, 사랑하여 불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이 어떤 정화의 은유는 아니겠는가. 하여 여왕의 팔찌를 가슴에 품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또다른 누군가를, 무언가를 구원하고자 나선다는 은유는 아니겠는가. 그것이 둥근 팔찌를 준 여왕의 의도라고 읽을 수는 없겠는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랑으로 아니 그 절망으로 불타오른 절이 어딘지 궁금해진다.      


p.s. 지귀의 상사병은 불면증을 불러왔을 텐데 잠을 잘 자야 한다는 교훈 하나 추가. 잘 때 자야 오는 여왕도 뵐 수 있으니까요.


p.s. 그의 이름 지귀(志鬼)는 어째서인가. 귀신의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의 귀신이라고 해야 하나. 지나치게 사랑하는 마음은 사멸에 이른다는 의미를 더하고 싶었을까. 혹시 지귀(至貴), 이를 지에 귀할 귀로 사랑이 귀함에 이른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한 사람을 사랑하던 마음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음보살의 큰 그림을 의미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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