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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22. 2024

두려움을 압도하는 두려움

아파트가 얼룩덜룩합니다. 외벽 도색을 위해 기초 작업 중인데요. 벌써 며칠 째 이국인들이 이 동 저 동 빈벽을 외줄에 매달려 내려옵니다. 방금은 편의점 야외 파라솔 밑에서 아침식사를 하시네요. 좌석이 모자라서 한 분은 반대쪽 선반 위에 상을 차리셨어요. 국물이 있는 뜨끈한 것을 드십니다.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어요. 익숙한 자리를 떠나 다시 시작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울까요. 두려움을 압도하는 더 큰 두려움이 있었겠지요.


미국 망명을 위해 기차 지붕 위에 앉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오래 전이 아니라 최근에요. 꼭 전쟁 때 우리나라 사진 같습니다. 빽빽하게 앉고 눕고 달리는 중에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렇지요.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질주이지만 방향을 틀었으니까요. 그들의, 우리들의 끝에 부디 평화와 안전의 시간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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