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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01. 2024

중요한 건 미러볼이 아니라

탄탈로스는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지옥으로 추방됩니다. 머리 위로는 잘 익은 열매가 드리운 웅덩이에 갇히죠. 열매를 따려고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가 멀어집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숙이면 물이 멀리 물러나 버립니다. 욕망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형벌이지요. 이것이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있어도 더더, 원하는데 하나도 없어서 더더, 원하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본능이라 생각합니다. 탄탈로스 이야기는 사그라들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그린 것이라고 하지만 제우스의 못된 저주가 아닐까도 싶어요. 지옥이라면 이미 산 목숨이 아니라는 건데 죽어서도 욕망에 휘둘린다면 어쩌면 좋을까요. 손에 넣고 싶지만 손에 닿지 않는 것을 tantilizing라고 한다지요. 애타게 하는 것이라고요.


우리라고 위장하는 나라는 인간이 질투하는 것은 먼 존재의 거대한 승승장구가 아니더라고요. 바로 곁의 타인들,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소소한 획득과 성취 같은 일들입니다. 나도 잘되고 타인도 잘 된다 0, 나는 잘되고 타인은 안 된다 +10, 나는 안 되고 타인은 잘 된다 -100 같은 식으로요. 나만 계속 잘되면 내가 잘난 것이고 타인만 계속 잘되면 부글부글 끓어올라 미칠 듯 분노하지요. 운명과 우연을 탓하면서요.


좋고 나쁜 일이란, 잘되고 안 되는 승률이란 그저 돌고 도는 미러볼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이리저리 헤매며 조명에 몸을 맞추고 싶지만 교묘히 각도를 벗어나서 캄캄한 자리로만 돌게 되는 것일 수도. 제 자리에서 미러볼을 기다리며 흥을 잃지 않고 흔들다 보면 조명이 "똬악"와닿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요. 모든 것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이라 치부하며 음풍농월하는 게 정신건강에는 나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춤 자체에만 집중하며 미러볼은 잊는 게 낫겠다고요. 너무 발광하느라 이마에 와 비추는 미러볼의 빛을 모르고 지날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미러볼이 아니라 춤, 자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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