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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06. 2024

리 씨 정희행의 기원

이케가야 유지는 말합니다. 뇌는 불확실성을 가장 좋아한다고요.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건 뇌가 똑똑하다는 증거라고요. 기억은 미래의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요.


아름다운 방석을 보았습니다. 붉고 크고 빛나는 영원 같았습니다. 방석 아래쪽에 '상궁 청신녀 임인생 리씨정희행 생전무병소원 사후왕생 극락발원'이라는 문장을 수놓았고요. 발원자는 임인년에 태어나고 '정희행'이라는 법명을 가진 불교 신자입니다. 상궁으로, 건강하게 살다가 극락에 가기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가운데 빨간색 직물에는 삼산, 물결, 파도, 연꽃, 영지 모양의 불로초, 봉황 등을 수놓았어요.


저 방석은 부처님 바로 앞, 스님께서 앉으셨을 것 같고요. 이 씨 상궁은 아마도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셨을 겁니다. 자식은 당연히 없겠고요. 부귀도 공명도 바랄 일 없이 극락왕생만을 기원합니다. 방석 가장 하단에 흘려 쓴 글씨체 위로 한 땀 한 땀… 아마도 인생 중반 정도에 이른 상궁님의 발원은 원만성취 되었을 것 같습니다. 봄꽃 피고질 적에, 초여름 해질 녘에 또 가을과 겨울 술렁대는 불안의 마음들도 조금은 가라앉았겠지요.

(서울공예박물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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