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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07. 2024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는 것

해녀 은퇴식을 치른 제주 최고 상군 어른들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김유생 할머니는 열다섯열여섯에 첫 물질을 시작, 92세가 되셨네요. 물에 들어가는 게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욱신욱신 아프다가도 물에만 들어가면 싹 다 나았다고요. 구십 넘도록 해녀 일을 하신 비결을 묻자 "내려갈 때 본 전복은 따도,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는 것. 전복이 대작대작 붙어 있어도 하나 더 따려고 되돌아갔다간 숨이 모자라서 죽어. 욕심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해." 하십니다. 날이 맑으면 물질을 하고 비가 오면 망사리 터진 것을 꿰매며 살았다고요. "고맙고, 고맙수다. 덕택에 우리 애들 살았수다. 죽어서도 바다에 뿌려주면 영영 물질허멍 살크라." (240603 조선)


내려갈 때 본 전복만 따고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읍시다. 하나만 더 하려고 하지 맙시다. 조금만 더 하려고 하지 맙시다. 그러나 무리 안 하고, 욕심 안 부리고 사는 것으로 살아갈 수가 있던가요. 아픈 팔에 파스를 붙이고 아픈 다리를 절뚝이고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두통에 시달리고 마음병에 어지러운 채 하던 일을,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조금 더 하려고 오늘도 그 일을 해내려고 숨이 찬 게 우리들 아닌가요.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하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물밖으로 나와서 내뿜는 휘파람소리. 커피믹스 두 개를 탄 진한 커피를, 샷 추가한 커피를, 박카스와 판피린을,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면서 몸은 여기 있으나 정신은 반 정도 나간 것 상태로 최선을 다하려는 것 아닌가요. 숨찬 소리가 한숨소리가 아이구, 신음소리가 저마다의 숨비소리 아닌가요. 물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벌어진 입으로 숨 대신 먼지가, 물이, 기름이 밀려들어오는 것은 아닌가요. 모쪼록 안전했으면, 모쪼록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그다음의 일이 되어버리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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