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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n 09. 2024

상상력의 부재 탓인가

몇 번이고 가보고 싶던 장소였다. 빌딩 속에 옛 도시의 유구들이 전시되어 있다니. 상상만 해도 설레오는 기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지하는 서늘해지기 시작.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니 투명한 유리 바닥 밑으로 석재들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높지 않은데도 허공에 떠있는 기분, 고소공포증 같은 것이었다면 아마도 시간의 높이였을 것이다. 동선을 따라 설명을 읽어가며 관람하는데 조금씩 실망감이 밀려왔지만 뭔가 나오겠지 기대했는데…


조선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온전히 발굴되어 해당 유적을 원래 위치에 보존하기 위해 개관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그것이다. 공평 빌딩 철거 과정에서 콘크리트 슬래브와 H 빔이 조선 시대 유구를 파괴한 채 세워져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는데 그 과정의 “공평동 룰”은 발굴 유적을 전면 보존하는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받아 4층 높아진 26층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좋다. 개발과 보존의 방식이 함께하다니 바람직하다. 공평동 유적의 토층은 현대의 표토층 밑으로 19세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유물들, 그 밑의 문화층은 18세기~19세기의 유물, 그 밑으로는 16세기~ 17세기의 유물들을 지나 제일 밑으로는 자연 퇴적층까지. 현재 우리가 서있는 땅의 높이는 비가 오면 흙이 밀려오는 등의 이유로 높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땅의 깊이에 따라 지난 시기의 유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아쉬웠다. 평면적이었다. 물론 관람해설을 들으면서 보았다면 완전히 달랐겠지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들을 수 없으니 해설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입체적인 영상을 쏘아준다면 어땠을까. 석재 위로 가상 건물의 영상이나 프린팅 된 투명한 천을 설치해 주면 어땠을까. 미니어처 건축물들을 거리 사이사이 조금 더 많이 세워두었으면 어땠을까. 전동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기수, 여리꾼, 왈짜의 종이 인형이었다. 뒷면에는 상세한 설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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