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13

by 김박은경

12. 보관하다-keep-保 : 정족산사고, 외규장각

1) 정족산사고

강화사고(江華史庫)는 인조 6년에 강화도 마니산에 설치하며 전주사고본을 보관했습니다. 효종 4년에 사각(史閣) 실화사건으로 불타게 되고요. 그래서 정족산성 안에 장사각과 선원보각 건물을 짓고 헌종 1년에 남은 역대 실록과 서책들을 옮겼다고 합니다. 수호사찰인 전등사가 사고를 지켰고요.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옮겨져 보관하다가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지고요. 광복 후 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보존 관리하고 있답니다.


정족산사고 건물은 언제 없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는데요. 1931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정족산사고’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전후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답니다. 아래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1998년에 정족산사고가 복원 공사 되었고요.


장사각은 역대 제왕의 실록을 보관하는 곳이고요. 선원보각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곳이고요. 취향당은 정족산사고의 별관입니다. ‘취향당’의 편액은 영조가 친히 행차해 하사한 어필입니다.


12-1.jpg (정족산사고. ‘조선고적도보’ 1931년. 사진출처: 인천투데이, 2021. 01. 04)
12-2.jpg (정족산사고지. 사진출처: 인천투데이, 2021. 01. 04.)
12-3.jpg (장사각과 선원보각. 사진출처: 인천투데이 2021. 01. 04.)
12-4.jpg (취향당. 사진출처: 인천투데이 2021. 01. 04.)

2) 외규장각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1776년의 일입니다. 바로 그 해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립하고 정식 국가 기관으로 발족합니다. 규장각은 왕립도서관이자 학술 연구기구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출판과 정책 연구 기능까지 발휘한 기구였다고 해요. 정조의 훌륭한 업적들은 대부분 규장각을 통해 이루어졌다고요.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입니다. 1782년 규장각 보관 자료 가운데 왕실의 주요 물품과 도서를 보관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강화도 행궁에 건립되었는데 전통적으로 강화도가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기록물 보관에 적절한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화도에는 실록과 왕실 족보 등을 보관하는 정족산사고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니까요. 정조는 여기에 외규장각을 추가함으로써 강화도를 국가의 주요 기록물 보관 거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외규장각에는 왕실이나 국가 행사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하여 왕실 관계 서적을 보관했다고 합니다. 총 1,000여 권의 서적이 있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의 고서와 은괴 등을 약탈해갑니다. 영조의 아들 효장세자 책봉식을 기록한 ‘효장세자 책례도감의궤’, 숙종이 인현왕후를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숙종 인현왕후 가례도감의궤’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나머지는 불태웠다고 합니다.

12-5.jpg (외규장각도, 강화부 궁전도. 사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2-6.jpg (외규장각)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촉탁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합니다. 중국서적으로 분류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의궤의 제목을 정리해서 한국 기자들에게 알리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요. 오랜 반환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서울대학교는 1991년 정부에 도서 반환 추진을 요청, 1992년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목록을 프랑스에 전하여 도서 반환을 요청합니다. 반환이 되는 듯하다가 2010년 11월 12일 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대통령 간에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계약 갱신 임대 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합의하여 2011년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무려 145년 만에 297권의 의궤가요!


의궤란 무엇일까요? ‘의식’과 ‘궤범’을 합친 말이고요. 조선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 행사와 의식의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종합 보고서라고 합니다. 의궤는 조선 초부터 만들어졌지만 현재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것만 남아있다 하고요.


12-7.jpg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사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의 가장 큰 특징은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된 어람용(御覽用) 의궤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종이와 표지, 안료의 재질, 장정 방법, 서체와 필사, 그림의 수준 등 형태와 재질과 제작 기법 등이 매우 뛰어나다고 합니다. 조선서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문화재로서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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