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올리버의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제목을 보고 그레고르 잠자인 줄 알았습니다. 벌레로 변신한 잠자의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는 오래된 죽음의 유적에 대한 책입니다. 제 취향과 흡사해서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위의 책에서 와이라카를 만났습니다. 와이라카는 마오리족의 전설 속 인물인데요. 3000년 전, 선장의 딸이던 와이라카는 여성과 아이들만 타고 있던 카누가 전복될 위험에 처하자 여자는 노를 저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앞장서 노를 저어 배에 탄 사람들을 구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북섬 베이오브플렌티 해안에는 와이라카의 용기를 기리는 청동 동상이 서 있다고요. 멀리서 찍은 사진 속 그녀는 작고 어리고 여리게 보입니다. 위험이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기회로 돌아온다는 것, 불행과 다행의 핑퐁이 흥미진진해집니다.
사라지는 골목, 흑백사진, 대사를 다시 얹은 초창기 영화 속 거리를 헤매는 일은 즐겁습니다. 멀리서 전체를 보며 세부를 살피는 렌즈로 보면 아침의 버스, 오후의 전철, 무심히 걷는 사람들, 수박과 자두와 복숭아와 포도를 파는 간판 없는 상점들이 아득하게 보입니다. 저 자신도 멀찌감치서 또 밀접하게 그러나 타인처럼 보게 됩니다. 마음 상한 일들, 해명하지 못하는 답답함, 불편한 관계, 불만족스러운 진행속도 같은 것들에 대한 상심이 살짝 귀엽게 보입니다. 그냥 바라봅니다. 열어둡니다. 시간 속에서 이 무상함이 소중함으로 변하는 것도 같습니다. 누구도 나의 삶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 의연한 하루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