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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Aug 13. 2024

이걸 어떻게 버려요?

버려요, 버려! 기사님은 소리칩니다. 버스 좌석에서 주웠는데 앞으로 가져가니 버리라고 하시네요.  열쇠는 두 개, 낡아서 녹슬기 시작했는데요. 코를 올린 코끼리 한 마리가 링에 달려있습니다. 창고 열쇠일까요. 농막의 열쇠일까요. 아침 버스를 탄 사람이라면 이른 출근자일 텐데요.   


열쇠로 잠그는 것들은 중요한 것, 도난의 위험, 나만의 것 혹은 우리들의 공공재. 버릴 물건들은 모아둔 창고일 수도. 이걸 버리면 열쇠수리공을 부를까요? 자물쇠를 잘라 버릴까요? 잃어버린 줄 모를 수도 있고요. 그걸 잃어버림 어떡하냐고 엄청 혼인 날 수도 있고요. 부주의하다고 욕을 들을 수도 있고요. 아침 내내 혹은 더 오래 맘이 불편하겠습니다.


저 코끼리는 더운 나라의 기념품이겠지요. 금빛 열쇠고리였을 텐데 황동빛에 녹이 끼어 있어요. 코끼리만 떼어 연결했군요. 코를 높이 든 코끼리는 부귀영화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타러 갑니다. 한 남자가 손에 책을 들고 있어요. 고백록입니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것이요. 제가 해둔 그 책의 메모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타락하기 쉬운 것들도 선한 것임을 저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것들이 최고선이거나 혹은 전혀 선이 아니라면 타락할 것이 없기 때문에 결코 타락하지 않겠지요. 타락한다는 것은 어떤 해를 끼치면서 선을 깎아먹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가 타락한다는 것은 자기의 선을 점점 상실하는 것입니다. 만약 선을 모두 상실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한 것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열쇠 주인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 열쇠 잃음의 마음 상심을 걱정해 주는 일? 소소한 분실물 찾아줄 여유 없이 바쁜 기사님의 하루에 대한 연민? 모르겠습니다. 열쇠는 미지를 여는 열쇠라는 것만은 알 것 같습니다. 열쇠는 버렸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두고 왔어요. 주인이 열쇠를 찾을 수 없다면 열쇠가 주인을 찾아가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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