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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Sep 14. 2024

좋은 춤

김영죽교수는 다산연구소 칼럼에서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어른이자 스승"인 어머니, 모성에 대해 말합니다. 강호보(姜浩溥, 1690~1778)와 그의 어머니, 안동 김 씨 부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데요. 어머니 김 씨 부인을 추모하며 지은 「선모행장(先母行狀)」을 통해서요. 어머니의 교육과 경제주체로서의 면모, 모자지간의 정서적 유대까지 생생한 일화들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글을 파고드는 아이에게 끝까지 답해주고 성장한 후에도 청탁을 멀리하고 지조를 지키기를 당부하십니다. 반듯하고 바른 모성입니다.


오래전 <별에서 온 그대>와 최종회를 향해 달려가는 <미녀와 순정남>의 엄마들은 전형적 모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성보다는 여성, 가족보다는 자신이 우선입니다. 능력 있는 자식에게 기생하는 악역을, 그럼에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역할을 맡습니다. 분노하고 비난하며 몰입을 유도하지요.


엄마라고 늘 착할 리가요. 선하고 바르고 아낌없이 줄 리가요. 모든 엄마가 그럴 수는 없고 늘 그럴 수도 없습니다. 보편적인 엄마는 때때로 선하고 때때로 악하고, 의지로 이기의 본능을 누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녀 싸움의 하이라이트는 그러게 누가 낳아 달랬냐는 딸의 일성과, 나도 낳고 싶어서 낳은 건 아니라는 엄마의 일성 같습니다. 딸 역할이 힘들 때 저도 속으로 외친 기억이 납니다. 아니, 딸 역할이 아니라 사는 게 힘들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요? 아무 대답도 안 하시던 둥근 등만 떠오르네요. 이미 힘든 시절 굳이 아이를 더 낳고 싶진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물론 지극한 사랑을 주셨지만… 잔인한 질문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만 내지요. 엄마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도 외국도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느낀다는 빈둥지 증후군의 경우가 5프로를 넘지 못한다는 기사가 기억납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식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시간이거나 돈이거나 마음이거나 노동이거나 그 모든 것을요. 드라마 속 이기적 모성성은 그 반대의 현실에 대한 지적과 각성의 방식일 수도 있겠습니다.


엄마들도 딸도 자신의 행복 찾아내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X멜로>의 엄마 김지수와 딸 손나은의 결말이 좋은 해법 같습니다. 비현실적이긴 하지만요. 경제적 고난에 따른 이혼을 통과하고, 엄마이면서 자신만의 꿈을 이루게 되니까요. 엄마들이란, 딸들이란 서로의 걸음을 이어가며 세상이라는 동심원을 완성해 가는 역할을 맡은 것도 같습니다. 저의 시 한 편을 올립니다.


매혹을 따라 헤엄칠 거야 헤엄치면 지느러미가 생길 거야 달리면 다리가 생길 거야 노래하면 음성이 생길 거야 치마가 부풀어오르잖아 강해졌고 분명해졌지 멀리 갈 거고 돌아보지 않지 행복해도 미안하지는 않아


간절히 부르지 쳐다보라고 애원하지 손을 잡아끌지 그래도 바라보지 않을 거야 먼지 같으니까 떠올리지도 않을 거야 지나갔으니까 없으니까 아니니까


춤을 출 거야 둥글고 커다랗고 좋은 춤, 나의 사자가 사슴과 고양이가 생쥐와 종달새가 크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올 거야 얼굴 속에 얼굴을 내밀고 음성 속의 음성을 내면서 발과 발이 날개와 날개가 뒤섞이면서 커다란 춤이 될 거야 조금씩 빨라질 거야 아무도 따라 할 수 없어 멈추게 할 수 없어 점점 빨라 그림자도 없어 투명할 거야


빨아들일 거야 중심이 될 거야 궤도가 될 거야 괄호 안으로 괄호 밖으로 새로운 질문들이 떨어진다 해도 답은 변하지 않을 거야 달라졌으니까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까 아가들 소녀들 언니들 아가씨들 엄마 이모 고모 할머니들 이름 없이도 아이를 낳고 어르고 기르고 밥을 짓고 걸레를 빨고 계절마다 햇살을 썰어 말리는 그 자리를 둥글게 둥글게 돌 거야


함께 부풀어 차오르고 넘치고 젖고 다시 마르도록 우리가 누군지 잊지 않을 거야 떠도는 바람은 떠돌게 하고 깨진 바람은 깨지게 하고 다음 스텝을 멈추지 않을 거야 밟는 곳마다 빛이 날 거야 가는 곳바다 빛이 될 거야 사랑하니까 그렇게나 사랑하니까


-김박은경, <좋은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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