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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Sep 15. 2024

호락호락해 보이는 린치핀

어느 조직이나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럭저럭 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일 잘하는 사람이 일을 많이 하고 전체적 성패까지 좌우한다. 그 사람이 빠지면 곧 표가 난다. 뭔가 빠지고 실수가 벌어지고 뒤죽박죽이 된다. 정말이지 일이 잘 되거나 못 되거나 무심한 사람들이 더 많고, 나 몰라라 달아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할 일만 최소로 하고 도망치는 게 급여 대비 효과적인 근무 방식일 수도 있다. 일이 재미없어진다는 역효과는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다. 린치핀이 되고 싶다. 린치핀(linchpin)은 마차나 수레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을 말한다. 세스 고딘의 책 제목으로 사용된 바 있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 대체불가능한 사람, 단 한 명, 구심점 같은 것.      


호락호락해 보이는 사람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때 반하곤 한다. 호락호락이란 무엇인가. 호락호락(好樂好樂)이 아닐까 짐작했다. 무슨 일이건 좋아, 좋아하는 그런 예스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호락호락은 홀약홀약(忽弱忽弱)이었다. ‘소홀히 할 홀’에 ‘약할 약’을 써서 소홀하고 약한 것을 의미하고, 두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무르고 약하다’는 의미다. 홀약홀약, 이라고 하려니 발음이 어려워서 단모음화되면서 호락호락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니 호락호락하다는 단어 자체를 호락호락하게 보면 안 되겠다.      


린치핀+호락호락해 보이는 사람은 어떤가. 이런 사람에게 더욱 반할 것 같다. 말없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 생색내지 않고 쉽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고, 타인의 실수에 대해 관대하며,  어지간한 잘못들은 이해해 주고, 격려해 줄 줄 아는 “어른” 아닐까. 이거 아냐, 이거 틀려,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나, 이걸 일이라고 하나, 생각 좀 하고 하라면서 야단치고 상처 주는 사람들 많다. 야단치는 건 쉽다. 소리 지르면 끝이다. 화를 내면 끝이다. 돌아서면 끝이다. 그것의 참과 거짓을 따질 필요도 없어진다. 하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시간이 없거나 상상력이 부족했거나 지나치게 긴장했거나 해내지 못하는 경우의 이유들이 길고 길어질지도 모른다. 대번에 저절로 잘하는 사람은 없다.       


추석이니 다들 모일 텐데. 크고 작은 소란이 이어질 수도 있을 텐데. 더욱 어른이 되었으니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물렁물렁 흐릿흐릿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없어 보이다가도 정말 없으면 대번 표가 나는 그런 사람. 부드럽고 투명해서 호락호락해 보이지만 정말로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린치핀이 되고 싶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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