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단 한 벌의 옷이라면 책임이라는 시접이 있다. 시접이 없는 옷은 제대로 입을 수가 없다. 그것은 옷이 아니라 하나의 패턴에 불과하다. 사랑은 책임이라는 말과 무관할 것 같다. 사랑의 감정은 자연 발화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이 없다면 가면의 사랑에 불과하다. 사랑은 서로의 패를 다 내보이고 이래도 좋니, 이래도 괜찮겠니,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시승을 하고 샘플을 써보는 과정 없이 덜커덕 합체한다면 소소한 불협화음들로 동상이몽의 혼돈을 겪다가 끝나기 쉽다. 가장 약한 부분을 내보이고 가장 못난 부분을 기꺼이 들키면서 사랑은 정련과정을 거친다.
책임이 없는 사랑은 유희에 그치기 쉽다. 유희의 사랑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사랑의 시기도 있고, 그런 사랑만 하는 사람도 있다. 아름답지만 한 번 입고 버리게 되는 옷이 있고 의외로 잘 어울려서 닳는 게 아까워서 아껴가며 조심히 오래오래 입게 되는 옷도 있다. 어떤 옷을 선택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듯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의 책임의 내용이라면 “당신만을 최선을 다해 사랑함”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영원을 꿈꾸고 있다면 책임은 필수다. 단 한 벌의 옷을 평생 입으려면 손이 많이 간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의 순간이 지나며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책임은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 흔들리는 일상을 잡아주고 점프할 수 있는 도약대가 되어준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큼 가슴 떨리는 축복이 또 있을까. 물론 사랑의 책임을 다한다 해도 영원이 아닐 수 있지만, 그토록 허약한 사랑이기에 주의집중이 필요한 것.
사랑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성큼 성장하게 된다. 다른 무엇으로도 할 수 없는 경험이어서 비싼 값을 치루기도 하는데 그게 아까워서 내내 사로잡힐 수도 있고, 그게 지겨워서 그쪽 방향은 쳐다도 안 볼 수 있다. 일평생 단 한 사람만 사랑했다고 믿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절반은 거짓이다. 사랑도 사람도 끊임없이 변하고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더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랑을 해보아야 사랑을 아는 걸까. 사랑의 산전수전을 겪어야 모르는 게 없게 될까. 그렇지 않다. 흐르는 물만 바라보며 대오각성하는 선생이 있듯 단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경험만으로도 모든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 속의 만 사람, 내 속의 만 사람이 만들어내는 희비쌍곡선을 타고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사랑을 실컷 경험할 수 있다.
사랑의 마음, 사랑의 기억, 사랑의 믿음, 사랑의 기대… 사랑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갑자기 따스해진다. 든든해진다. 무의미가 의미로 변한다. 줄줄이 매단 전구를 보면 한여름에도 성탄절을 떠올리듯 사랑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덜 아프게 해 주고 덜 슬프게 해 주고 덜 힘들게 해 준다. 더 행복해지고 더 즐거워지고 더 재미있게 해 준다. 그러니 사랑이 왔다면 매몰차게 밀어내지만 말고 정성껏 잘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 사랑 가득한 성탄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