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

by 김박은경

사랑의 편지를 쓰는 사람을 발견했다. 갈색 구두는 앞코가 둥글고 상처 하나 없다. 진갈색 재킷은 멋있네. 구불구불한 머리, 흰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


사랑의 편지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그의 옆에 놓인 쇼핑백과 그 속에서 고개를 내민 박스 리본과 고개를 숙이고 살그머니 웃으며 천천히 정성스레 써 내려가는 자세 때문. 그 모습을 보며 따라서 웃으며 환했던 나는 곧 펑펑 울게 되는데.


제일 먼저 도착한 친구의 딸아이가 작년 말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사이 우리는 톡으로 성탄절도 축하하고 신년도 응원하고 몇 사람의 생일도 요란하게 축하했는데. 내내 별말이 없었는데.

너무 아프면 털어놓을 수 없다. 너무 힘들어도, 슬퍼도 침묵 속에 머물게 된다. 환하던 카페 통창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물의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