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시 쓰기>에서 나태주는 "저수지의 시학"에 대해 말합니다. 시인은 일생을 두고 시를 쓴다고요. 그러다 보니 앞부분의 시와 뒷부분의 시가 다를 수 있는데 이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고요. 처음 시를 출발시킨 시인의 경우는 샘물의 시기여서 자기가 판 샘에서 물을 퍼내어 시를 쓰는 시기라고요.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있고 카랑카랑한 시가 쓰일 것이라고요. 유년의 경험과 청춘의 열정이 시의 내용이 되고 시의 숨결도 힘차게 마련이라고요. 반면 시를 두고 오래 고민한 시인, 시인으로서의 변화나 전기를 마련하고 싶어 애쓴 시인은 샘물의 시기를 벗어나 저수지의 시기를 맞는다고요. 샘물의 시기가 시인 개인의 샘물에서 퍼낸 물로만 시를 쓰는 시기라 한다면 저수지의 시기는 다른 사람들의 물이 함께 섞인 저수지의 물로 시를 쓴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시의 주제나 내용, 기술 방법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시를 한 개인의 고백과 하소연을 담은 글이라고 한다면 저수지의 시기에는 개인의 고백이나 하소연뿐만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의 고백과 하소연을 함께 담은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를 것이라고요. 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고 깊으며 나의 문제보다는 세상의 문제, 타인의 문제에 시선이 가 있을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 시기에도 시인이 본래 가진 샘물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계속해서 자신의 샘물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게 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이 시기의 시인은 저수지의 시인이되 샘물을 숨긴 저수지의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년 같은 선생님이 가 닿으신 저수지를 상상합니다. 행사장의 무대에 선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다들 기대가 가득하여 바라보는데요. 역시 그만의 순진무구에 솔직함에 눈치 보지 않는 말씀에 빵 터지고 감탄하다 보면 햇살 아래 고요한 저수지를 보는 마음이 됩니다. 남과 다름을 감추지 않고, 속엣말을 자연스레 꺼내며 새로운 틈을 내시지요. 예상밖의 말씀을 하시겠구나, 하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인용한 책에서 제 시를 돌아보고 끄덕이게 되었어요. 무엇을 써야 하나, 쓰는 게 맞나, 이대로 가도 되나, 혼자만의 시 쓰기가 되면 어쩌지, 영광을 꿈꾸면 안 되는데, 흉내도 안 되는데, 영합도 금물이고… 등등의 혼돈과 자괴감에 어지러울 때 저 '저수지'를 생각합니다. 저만의 샘물도요. 서로는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쓰레기에 나뭇잎에 어딘가의 흐름이 멈추지 않도록 살피고 정비해야겠습니다.
눈과 귀를 맑은 물에 씻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