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나 밴줄렌은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침팬지는 먹이를 구할 때 매우 빈틈없이 체계적으로 행동한다. 또한 다른 개체의 외형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심지어 다른 개체에 한 번 품은 원한을 20년 가까이 잊지 않는다. 영장류 학자들에 따르면 침팬지들은 한 대상에 몰두하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탓에, 사랑에 빠진 개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그 개체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야말로 죽을 만큼 슬퍼한다.” 쉬운 사랑과 결별과 망각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인간형에 대해서라면 침팬지가 인간보다 낫다고 보면 될까요.
같은 책에서는 아니지만 털실을 감아둔 조형물을 어미라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아기 원숭이 이야기며 죽은 아기 원숭이를 안고 업고 다니는 어미 원숭이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이는 원숭이가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동물이 인간보다 낫다,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는 무의미합니다.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무엇보다 낫고 덜할 것이 없습니다. 각자의 레이스를 달릴 뿐이니까요.
다들 덥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조금 지나면 이제 덥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겠지요. 조금 더 지나면 춥다는 이야기를 하겠지요. 조금 더 지나면 한 해가 다 갔다는 이야기를 하겠지요. 날씨는 사랑처럼 우리의 삶에 커다란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 빼면 할 이야기가 없고요. 그 일이 아니라면 기분이 왔다 갔다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이 아닐까요. 어떤 날씨인가요. 어떤 사랑인가요. 모든 날씨에 민감하지는 않고 모든 사랑에 매달리지는 않으니까요. ‘사랑에 빠진 개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그 개체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야말로 죽을 만큼 슬퍼’하는 침팬지도 모든 사랑을 그렇게 대하지는 않을 걸요. 침팬지도 스쳐가는 사랑이 있고, 사랑인 줄 알았던 오해가 있고, 사랑이면 좋았을 아쉬운 감정이 있고, 지긋지긋한 사랑이 있고, 달아나고 싶은 사랑이 있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있을 겁니다. 특별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의 침팬지라면 그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리다가, 잃게 되면 잊지 못하고 슬픔의 영원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제 맘대로 상상합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침팬지는 침팬지고 저마다 다른 사정이 있을 테니까요. 이런 날씨에도 사랑에 빠지는 연인들은 어김없이 있을 겁니다. 이런 날씨라서 사랑을 끝내버리는 연인들도 있을 거고요. 침팬지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름이라 지치지만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견디지 말고 즐기면 좋겠습니다. 진짜 좋은 사람과 사랑이 함께라면 말해 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