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삼 년,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낸 골딘의 사진을 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래의 컷은 <1986 쿠키와 빗토리오의 결혼식, 뉴욕, 미국>, 다음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쿠키는 빗토리오 스카르파티와 결혼한다. 빗토리오는 뉴욕에 살고 있던 나폴리 출신의 아티스트였다.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의 소읍인 포지타노의 코즈모폴리턴적 세계를 골딘에게 소개해 준 이가 바로 빗토리오였다. 거기서 둘은 그 해의 여름 한철을 함께 보낸다. 쿠키가 죽기 수개월 전인 1989년, 빗토리오 역시 에이즈로 죽는다.(…)"
그다음 사진은 <1989 빗토리오의 관 앞에 선 쿠키, 뉴욕, 미국>입니다. "몇 개월 간격으로 차례로 죽어 간 쿠키와 빗토리오의 비극은 골딘을 대단히 상심시킨다. 사진에서도 급진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한 시기가 슬픔과 상실, 그리고 행동에서의 커다란 변화로 각인되면서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사려 깊고 내성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그리고 <1989 쿠키를 간호하고 있는 섀런, 플로번스타운, 매사추세츠, 미국>입니다. "쿠키와 함께 섀런 역시 오랜 기간 동안 골딘의 사진에서 익숙한 모델이었다. 새런의 근육질적인 아름다움은 쿠키의 화려하고 지극히 여성적인 관능미와 완벽한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쿠키 포트폴리오에 있는 이 사진은 아마도 수개월 내에 쿠키의 목숨을 앗아 갈 질병과 맞서 있는, 이전의 연인이요 지금은 친구인 두 사람의 모습을 잡아낸 것이다. 팔 년간이나 섀런의 연인으로 있던 쿠키가 남자와 결혼한 기념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그러나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쿠키의 마지막 수개월을 곁에서 간호한 사람은 섀런이었다."
1986~1989 삼 년, 사진 속 등장인물은 둘에서 셋에서 넷입니다. 쿠키와 섀런이 8년간 연인으로 사랑을 했고 헤어졌고, 쿠키는 이성의 빗토리오와 결혼, 빗토리오는 죽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쿠키도 죽습니다. 세 번째 사진을 보면 앓아누운 쿠키의 머리 위, 그녀의 결혼사진이 있지요. 그 순간들을 바라본 낸 골딘이 있고요. 넷이 아니군요. 그것을 몇 번이고 보는 제가 있고, 그것을 보고 계신 여러분도 있으니 무한의 관찰자들이 겹쳐지는 셈입니다.
겨우 삼 년인데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슬픈 것이 겹쳐지듯 이어집니다. 좋은 것 속에 슬픈 일이 숨어 있는 걸까요. 트로이의 목마처럼 기이하도록 아름다운 것 속에 도사리고 있는 걸까요. 흔하디 흔한 삶의 형태겠지요.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하네요.
앞으로 삼 년,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있겠지요. 누군가 사라지겠지요. 그 속엔 예외랄 것이 없겠지요. 그걸 일 년으로 좁혀 보면, 한 달로 좁혀 보면, 한 주로 좁혀 보면 이 순간이 기적이고 축복이고 지복이겠지요. 그럴 때 이 직장을 계속 다닐까요. 전폐하고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찾아 그것에 매달릴까요. 그것은 글일까요. 그때의 글은 어떤 내용일까요. 글 조차 무용하여 그저 호흡하며 바라보게 될까요. 그러다가 눈을 감는 걸까요. 서늘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