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김 박 은 경
공책 귀에
토끼 귀를 그렸거든요
그랬더니 공책이 귀를 쫑긋
토끼도 귀를 쫑긋쫑긋
수업 종이 울리기 직전에
둘이 소곤소곤
둘이 깡충깡충
작전이라도 짠 것처럼
내가 하품을 하는 틈을 타
후다닥 달려 나갔어요
저기 토끼풀 가득한 곳으로
저기 아카시아 나무 아래로
저기 운동장 너머로
아니, 여름 너머로요
저는 놀러 나간 게 아니고요
공책 찾으러 간 거예요
토끼요?
공책이요?
둘 다 안 보여요
뭐, 어디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겠죠
무임승차
의자 아래 토끼 한 마리
머리 위 짐칸에 기린 한 마리
노약자석 옆에 얼룩말 한 마리
출구 옆에 두더지 한 마리
모두 어딜 가려는 걸까
왜 아무도 없는 척
숨어 있는 걸까
소곤소곤 수군수군 무슨 말이야
버석버석 부스럭부스럭 무슨 일이야
“철로 변경 관계로 어두워집니다.”
그래도 숨죽인 채 조용하네
한 뼘 남은 햇살도 안 보여
어딨니?
아, 알겠다, 다들
표를 안 샀구나!
나도 그냥 의자인 척
입을 지운다
(출처 - 푸른 동시놀이터, 2026.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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