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시 만난 날

by 김박은경

낙산비치호텔 앞을 지나는데 기억 하나가 선명해집니다. 엄마 아빠와 머물던 곳이네요.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요. 서둘러 홍련암으로 향합니다. 엄마가 보여주셨던 그곳. 법당 마루의 작은 창. 손바닥 만한 유리 구멍으로 바위틈으로 파도가 일렁이던 그곳을 보고 싶어서요.


법당 안은 인파로 북적였고, 마루에는 매트가 깔려 있어 기대했던 '바다 구멍'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오던 곳이지만 그런 건 본 적 없다는 행인의 말에 기억이 잘못된 건가 싶어 발길을 돌리려는데 법당으로 들어서는 남편이 보입니다. 나도 절은 하고 가야겠다 싶어 들어갑니다. 그런데 매트 사이 유리 구멍이 그대로 있어요.


시간이 멈추고 그때의 공기가 고스란히 살아났습니다. "이리 와서 여길 좀 보렴." 거대한 비밀을 준비한 듯 속삭이며 손짓하시던 엄마. 어둑해지는 법당 안, 엄마의 손끝 너머로 발밑으로 바다가, 지구가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과 바다, 바위와 파도가 쉬지 않고 포효하던 그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삶이 두렵고 불안했던 어린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떨며 울음을 참으며 멀찌감치 있던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그때의 엄마처럼 말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나를 잊어버리는 날이 와도 이곳은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키겠지요. 훗날 나의 아이들도 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보여주겠지요.


돌아 나오는 길, 원통보전 앞 남천 나무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립니다. 붉은 열매 사이 앉아 있는 직박구리 한 마리. 다가가면 날아갈까 조심스레 멈춰 섰는데, 녀석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엄마야? 나 보러 왔어?" 혼잣말에도 미동조차 없습니다. 한 걸음씩 다가가도 그 자리를 지키는 새라니.


엄마구나. 나 보러 왔구나. 다시 태어나면 새나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하셨지요. 병상에 누워 계시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붉은 남천 열매조차 탐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엄마, 정말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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