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아빠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결혼을 하고 싶지만, 또한 결혼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고요. 내심 충격받았습니다.
<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여성의 삶과 일과 결혼과 출산 등에 대한 소회를 적었어요. 그 책 때문일까요. 저의 지나친 솔직함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준 건 아닐까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데 나는 어떤 거울이었을까요. 뒤늦게 미안스럽습니다. 이 글은 지난 책에 대한 번외 편 혹은 변명 편일 수도 있겠습니다.
부모가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면 아이는 결혼을 동화로 착각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고(할 수 없었고) 삶의 명암을 숨기지 않았기에 아이는 결혼을 현실로 마주했을 겁니다. 지금 딸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겪는 지적인 고민에 가까울 겁니다.
이 시대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에게 긍정적 거울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우선 여성 역할을 '희생'이 아닌 '주체적 선택'의 서사로 바꿔줄 필요가 있습니다. 딸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이유는 아마 '엄마가 저렇게 노력해야만 꿈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라면, 나는 감당하기 싫다'는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엄마의 고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한 이유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두려움을 전이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어요. 결혼 제도에 불합리한 면이 있어서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투쟁하며 또 다른 방향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요. 딸들은 엄마들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 능력이 있는 세대라고요.
엄마들이 '완벽한 롤모델'이 되기란 버겁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롤모델'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결혼은 좋은 것이니 너도 해라, 하며 억지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엄마가 자신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아빠와 소통하거나 자신의 꿈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문제 해결 과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미 그렇게들 하겠지만) 결혼관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결혼하기 싫다고 할 때 그게 선택이라는 점, 어떤 선택도 긍정한다는 반응이 이어져야 합니다. 사실이 그러니까요. 아이가 결혼에 대해 압박을 느끼지 않을 때, 비로소 부모의 다정한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나도 저런 파트너십 같은 건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피어날 겁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엄마들이 자신의 꿈과 행복을 1순위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가 엄마의 얼굴에서 만족감을 읽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혼 제도의 불합리함을 토로하더라도, 그 끝에 엄마가 즐겁게 몰입하고 추구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아이는 안심할 겁니다. 엄마는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삶을 참 사랑하네, 결혼이 장애물은 될 수 있어도 엄마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하고 느낄 거예요.
엄마라고 한정지었지만 아빠들도 다르지 않겠지요. 가족을 제1순위로 놓고 자신을 지워버린 삶들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들의 귀밑머리 또한 희게 변해가는 날들, 새삼 그 삶이 안쓰럽고 고맙습니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애쓰는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