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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Dec 24. 2023

캐럴 속의 두 사람


긴 복도의 긴 카펫을 걸어오는 두 사람. 느릿느릿 기우뚱한 걸음을 부축하는 걸음. 화가 난 건지 찡그린 얼굴과 낮은 말소리. “엄마, 조금만 참지 그랬어. 말을 하지 그랬어...” 엄마는 아무 대답도 못하신다. 입술을 우물거리시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도열한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보고 있다. 너무 느리게 걸으시니 우연히라도 바라보게 된다. 엄마의 바지 아래로 자라는 짙은 얼룩, 바짓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있다.      


성탄절을 맞아 맛있는 것을 사드리러 나왔겠지. 몸이 불편한 엄마는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셨겠지. 바람도 쏘이고 내리는 눈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는 게 싫으실 리 없지만 식구들 고생스러울까 마다하셨겠지. 그래도 준비한 식구들 서운할까 봐 용기를 내셨겠지. 가장 고운 옷을 입혀드리고 머리를 빗겨드리고 로션도 발라드리고 준비가 많았겠지.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 도란도란 즐거웠겠지. 엄마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 또 조심하셨겠지. 그래도 정말 참을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스테이크집은 만석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기다릴 엄두도 못 냈을 것 같다. 대기석에 앉아 고개를 돌린 채 그분들을 못 본 척했지만 모른 채 했지만 그 마음은 알 것 같다. 답답하고 슬프고 속상하고 부끄럽고 화가 나고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안쓰럽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트리 꼭대기 황금별이 빛나는 밤이다. 꼬마전구들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밤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깨진 것도 있고 꺼진 것도 있다. 캐럴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누군가 같은 가사만 따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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