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정 회복을 위해 추천받은 교육은 최대한 참석하려고 한다. 그런 기회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당 살 때 우리 부부 상황을 아시는 분들이 "아버지학교"를 추천해 주셨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주제로 5주간 토요일마다 배웠다. 아버지와 나, 나와 아내,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가정의 회복을 돕는 운동이었다. 부부상담을 받은 직후라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아버지학교'의 숙제들을 통해 아내와 필요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아내 마음을 힘들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몇 가지만 나눠 본다.
1. "자녀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쓰기.
세 아이에 대해 각각 적으면서 나는 엉엉 울었다. '그래 이 정도쯤이야.' 하며 시작했는데 11번째부터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마음이 당황스러움으로변해갔다. 간신히 마무리한 '~20가지'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나 혼자 엉엉 울었다. 아이들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읽는 동안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예쁜 것만 다시 생각나면서 이런 아이들을 수시로 혼내고 무섭게 대했다는 것이 너무 한스러워서 엉엉 울었던 것이다. ' 아이들이 뭘 안다고 혼냈는지....' '아이들이 고작 7살, 5살, 3살인데.'
2. 손 편지 쓰기
가족과 나의 아버지에게 손 편지를 쓰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연약하고도 매우 소중한 존재인데 나도 모르게 함부로 대했던 것 같아서 편지글을 쓰면서 사과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자녀일 때 느꼈던 감정들과 부모가 되고 나서 느꼈던 마음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솔직하게 적음으로써 마음속 깊은 곳의 미움과 원망들도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3. 아내 발 닦아주기
캄캄한 방에서 대기중인 아내에게 안내되어 아내 발을 씻어주는 과정이었다.
' 그동안 미안하며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경건하게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아내발을 만져주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앞으로 잘할게요.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한 발씩 물에 담그고 천천히 씻어 주었다. 씻은 발을 내 무릎에 대고 하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었다. 준비한 양말을 신겨 주었다. 그러는 동안아내는 조용히 훌쩍이고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니 발을 닦아주는 물에 뚝 뚝 떨어졌다.
반대편 발의 거칠어진 발바닥이 느껴지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게 발을 맡긴 아내는 무거울까 봐다리에 힘을 주고있었다. 그런행동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분명 죄책감이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과 매일 싸우고 해준 밥도 안 먹고 출근하는 것으로 속상하게 했다.' 아이 셋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청소, 설거지를 하느라 24시간 정신없는 걸 알고도 불평과 짜증을 부렸다. 흐르는 눈물이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어깨가 들썩거릴 만큼의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반대편 발도 천천히 씻어주고 닦아 주었다.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 아내는 이제 흐느끼고 있었다. 조용히 일어나서 아내를 꼭 안아 주었다.
"여보, 사랑해요. 고마워요. 정~말 미안해요."
"나.. 도.. 요......"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하나였고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의식되지 않았고 서로의 '사랑'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아내를 더 이상 맘 아프지 않게 해야겠다는 강력한 다짐을 했다.
4. 수료 소감을발표하기.
마지막날 모두들 앞에서 소감문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저는 ~~ 아버지학교를 다니는 동안~" 소감문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울컥했고 바로 흐르기 시작했다. 소감문 읽는 내내 눈물이 주르르 콧물이 줄줄 흘렀다.
"5주간 정말 많이 깨닫고 반성했으며 바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을 위해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를 공개선언했다. 소감문을 끝냈을 때 아내가 내 옆에 자리하도록 진행자분이 호명해 주셨다. 아내가 내 옆에 다가왔는데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공개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이제 변하겠습니다."를 다짐했다. 아버지학교의 효과는 5개월 정도 지나면 슬슬 잊힌다고 해서 매일 감사노트를 쓰기 시작했었다.
결혼 5년 차에 부부상담하고 아버지학교라는 것을 통해 회복의 터닝포인트를 얻었다는 것은 엄청난 감사임을 이제는 정확하게 안다. 어떤 분은 70세가 넘어 이제 오셨다고 한스러워하셨다. 아들부부가 추천해서 일단 참여했는데 " 너무 늦게 왔다고... 아내와 지금 이혼 문턱에 서 있다"라고 하셨다. 진작 알았다면 이렇게 '뒤늦은 이혼' 당할 일도 없을 텐데요'라고 소감을 말씀하시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셨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말씀하시길 "결혼 5년 차에 왔다는 건 정말 복 받은 거예요. 앞으로 잘해봐요. 나처럼 뒤늦은 후회하지 말고요. 나도 남은 시간이라도 잘하려고 다짐했답니다."라며 부러워하셨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지금 결혼 13년 차. 인생 선배들에 비하면 이제 초등학교 졸업할 수준의 결혼년차이지만 급하게 시작한 결혼이라서 다사다난했다. 아버지학교 이후 달라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도 있다. 그나마 고친 것들도 여전히 실수하곤 한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글쓰기를하면서 그때의 다짐을 매번 리마인더 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바뀌어야 한다."
아내가 친구랑 대화한 내용을 조금만 적어본다
"너희 남편(나) 결혼 초에 비하면 많이 변했더라. 그런데 우리 남편(아내친구 남편)은 "똑같다.(안 변했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신혼 때부터 아내의 속상한 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던 찐친 친구가 아내에게 한 말이다. 다행이다. 부부상담과 아버지학교를 통해 알게 된 것부터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조금은 달라져가나 보다. 실수한 시간의 두 배이상이 회복을 위한 시간으로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많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