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사랑하는 막내에게
너와 대화하면서 아빠는 많이 울었다. 진짜로.
어떻게 우리 집 막내딸이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 라면서 말이야.
날씨가 쌀쌀해져서 몸이 으스스하다고 느끼는 날이었어. 엄마 아빠가 사실 귀찮아서 너에게 심부름을 부탁했던 날이야. 너도 덩달아 따뜻한 초코라테 한 잔을 먹기로 했지. 휴대폰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픽업해 오는 것이었는데 네가 과감하게 '오케이'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단다. 그런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너를 보면서 '고맙다. 고맙다. 이쁜 녀석'이라고 했는데 잠시 후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고 하길래 당황했단다.
'그냥 가서 주문한 것 픽업만 하면 되는데 무슨 문제가 생겨서 전화를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무슨 문제예요?'라고 물었더니 문제가 생겼다면서 혼자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고 엄마에게 와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지. 그 얘기를 듣고서 문제 생길 것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갸우뚱하다가 엄마가 해준 말을 듣고 아빠가 충격을 받은 거야.
"엄마. 카페 가서 주문한 거 달라고 나는 말을 못 하겠어. 엄마와 오면 안 돼? 같이 말하자!"
엄마의 그 말을 듣고 "이그!! 그냥 말하면 되지!"라면서 너에게 무턱대고 아빠가 전화를 걸었지.
"그냥 주문한 거 두 잔 주세요!" 그러면 되는데 말 못 한다고 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고 받아와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너의 대답에 아빠가 울게 된 거야.
"아빠! 못하겠어요. 나 평상시에도 내 의견 잘 말하지 못해! 친구들과 있어도 그렇고 선생님한테도 그렇고. 그래서 힘들게 지내!"
전화기 속에서 들리는 너의 말을 듣고서 "으응. 알았어! 용기 내서 받아와!"라고 했더니 "벌써 받았어요. 가고 있어요. 카운터 가서 두리번거렸더니 알아보시고 두 잔 알아서 챙겨주셔서 받아왔어요."라고 말하길래 더 울컥했단다. 아마 요즘 더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공부도 하고 필요한 것을 읽다 보니 '무서운 부모, 강압적인 부모, 권위적인 아빠'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 의견을 잘 말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매사에 쉽게 자기 의견을 포기한다는 것을 읽어서 그런가 봐. 아빠가 이제 알아가다 보니 너의 말이 아빠에게 번개를 맞은 듯이 크게 울렸단다.
얼마나 힘들었니.
늘 여차하면 혼나고
걸핏하면 지적당하다 보니
뭔가를 말하기도 힘들고 용기 내서 쉽게 해내기도 어렵지?
아빠가 포근한 구름 같아야 하는데
늘 가시방석같이 아직도 그렇게 하는가 봐.
네가 늘 불안하고 불편하고 용기를 잃어버리게 하나 봐
아빠가 더 포근한 아빠가 될게.
우리 모두 모여서 놀고먹고 그럴 때는
소리 지르고 난리 치면서 버릇없이 구는 것 같아서 늘 혼냈는데
오히려 밖에서는 필요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였구나.
너를 포근히 안아주는 아빠 될게.
너무 미안해.
진짜 충격받은 날이었습니다.
카페 가서 "주문한 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용기를 내야 할 정도라는 것을 알고 나서 충격받았습니다.
특히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무섭게 생겼거나 엄하게 말하면 '얼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심하게 장난치거나 소리 지르면 아무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아빠의 영향력, 아빠가 할 일을 다시 한번 깨달은 날입니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함을 머리에 새긴 날입니다.
딸들이 아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아빠보다 키가 크고 더 잘생기고 좋은 성품의 사람을 만나서 평온하게 지내는 결혼생활을 꿈꾸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커가는 시간들이 그런 아빠와 살아야 '그런 남자'를 만나고 '그런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지냈습니다. 정말 이제부터라도 딸들과 더 좋은 아빠로 지내도록 노력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집에서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이번에 막내와 대화하면서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이 느낀 것입니다. 새 학기가 되면 학부모 상담 때 가능하면 아내와 동반해서 참석하는 편인데 집에서의 아이들 모습과 학교에서 모습이 많이 달라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그런 모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걱정하거나 하지 않으면서 늘 버릇없고 막무가내로 지낸다는 생각에 사실 많이 혼내면서 '규율을 지키기'를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자기는 늘 혼나면서 눈치 보며 자랐기에 '우리 막내는 막내답게 크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것을 듣고도 늘 '버릇없는 막내'라면서 혼내고 혼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막내는 아직 어려서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것이 전부 버릇없는 것으로 몰려서 늘 혼났고 이제는 초4가 되었는데 버릇없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지고 늘 주저하고 쉽게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집에서 그렇다 보니 밖에서도 버릇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사실은 집에서는 '우리 집'이라는 생각에서 그나마 용기를 낸 것이고 밖에서는 늘 쭈삣거리는 '여자애'였던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고 너무 속상하고 너무 미안한 날이었습니다.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반성했습니다.
오늘도 그런 저의 모습을 드러내놓음이 창피하지만 꺼내놓고 막내에게는 편지를 씁니다. 혼자 알고 고치려 해 봐도 잘 안되고요. 공개하고 고치고 고친 모습을 또 나누면서 가정이 밝아지고 제가 진짜 사랑을 전해주는 아빠가 되도록 함께 성장해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Tamara Govedarov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