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감정을 돌아본다는 것이 상당히 불편해지고 불쾌할 수도 있으며 묵직한 마음이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타인과 대화하며 타인을 알아가는 것이 대화 중에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며 감정교류한다는 것은 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도 갉아먹는 수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처음에 말한 것처럼 사실 불편한 마음이 진실일 것입니다. 내가 모르는 내 마음, 내가 알지만 숨기는 마음,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숨겨진 마음들이 의도치 않게 속속들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부부상담을 할 때가 그랬습니다. 이대로는 아내가 큰일 나겠다는 생각으로 각오하고 문을 들어서고 설문지를 작성하거나 대화를 하기 시작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불편하고 말을 얼버무리면서 쭈삣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을 넘지 못한다면 아내가 큰일 날 수도 있고 삼 남매가 나중에 원치 않는 감정의 굴레를 들고 자기 가정을 가질 거라는 무서움에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저를 꺼내곤 했었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잊지 않고 제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아까 말씀드린 내가 모르는 마음, 내가 알고도 숨긴 마음,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닌데 숨겨진 마음을 또 꺼내면서 스스로 A/S 하는 중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기억처럼 부부상담 후 몇 년이 지나니까 은근히 잊힌 것들을 되돌이키는 의미로 감정단어들을 직면하면서 저를 고쳐가는 과정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부정적인 감정단어입니다. 이럴 때는 늘 그렇듯이 묵직한 마음이 제 마음 한가운데를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꺼내지는 감정, 그런 감정을 느꼈던 상황들을 직면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 감정과 감정 표현, 감정에 따른 표현이 상대방 특히 아내와 삼 남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돌아보면서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먼저 그 단어들의 제대로 된 뜻을 알아보고 시작합니다. 제가 알고 있던 의미들이 제대로인지 이것도 한번 짚어보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문으로 번역해 보면,
번역이 안 됩니다. 번역이 안 되기보다는 그 의미를 살려서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을 찾는 개념입니다.
'짜증'이라는 것은 어원적 배경이 순우리말이었습니다. 우리말에서 찾아보면,
형태: ‘짜다’(맛이 짜다와는 다른, 기분이 언짢고 불쾌한 느낌을 주는 동사적 뉘앙스)와 접미사 ‘-증’이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 국립국어원 자료에 따르면 "짜증"은 19세기 문헌에서 이미 쓰였으며, 일상적 감정을 표현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미 확장: 처음에는 단순히 "언짢고 성가신 기분"을 뜻했지만, 현대에는 "불쾌감, 성가심,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태"까지 넓게 쓰입니다.
'짜증'을 영어로 번역해 보면,
Annoyance: 가장 일반적인 번역. "짜증"이라는 감정을 명사로 표현할 때 사용.
예: His constant talking is such an annoyance. (그의 끊임없는 말이 정말 짜증이다.)
Irritation: 성가심, 불쾌감을 나타내는 말. 일상적 짜증뿐 아니라 의학적 "자극"에도 쓰임.
예: Her attitude caused me great irritation. (그녀의 태도가 나에게 큰 짜증을 줬다.)
Annoyed / Irritated: 형용사로 "짜증 난" 상태를 표현.
예: I’m annoyed because you’re late. (네가 늦어서 짜증 나.)
Get annoyed / Get irritated: 동사적 표현으로 "짜증 나다".
예: I get irritated when people interrupt me. (사람들이 말을 끊으면 짜증 난다.)
Lose your temper: 짜증이 심해져 화를 내는 상황.
예: He lost his temper after waiting too long. (오래 기다리다 결국 짜증이 폭발했다.)
뉘앙스에 따라서 나뉜 것을 살펴보면,
짜증 : annoyance , 일반적, 중립적
짜증(성가심, 불쾌감, 자극): irritation
짜증 나다(일상적, 가벼운 불만): get annoyed
짜증 나다(조금 더 강한 불쾌감): get irritated
짜증 폭발(화로 이어지는 강한 짜증): lose temper
즉, 가벼운 "짜증"은 annoyed/annoyance, 조금 더 강한 불쾌감은 irritated/irritation, 화로 번지는 경우는 lose temper가 적절합니다.
짜증을 일본어로 번역해 보면,
苛立ち (いらだち / 이라다치) : 가장 일반적인 번역. 마음이 초조하고 성가신 상태.
うんざり (운자리): 지겨움, 진절머리남. "짜증 나"를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할 때.
むかつく (무카츠쿠): 속이 뒤집히는 듯한 강한 짜증,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
腹が立つ (はらがたつ / 하라가타쓰): "화가 난다"라는 뜻으로, 짜증이 화로 이어질 때 사용.
뉘앙스로 비교해 보면,
짜증 苛立ち(이라다치) : 일반적 성가심
짜증 うんざり(운자리) : 지겨움, 진절머리
짜증 むかつく(무카츠쿠) : 강한 불쾌감, 화 직전
짜증 腹が立つ (하라가타쓰) : 화가 나는 상태
즉, 일상적인 "짜증"은 苛立ち(이라다치)가 가장 적절하고, 조금 더 강한 표현은 むかつく(무카츠쿠)나 うんざり(운자리)를 씁니다.
아랍어로 번역해 보면,
إزعاج (이즈아즈) : 성가심, 귀찮음. 가장 일반적인 번역.
아랍어로 번역될 때 뉘앙스에 따라서 나뉘어보면,
انزعاج (인즈이아즈) : 불쾌감, 짜증 남. 조금 더 감정적인 뉘앙스.
غضب (가다브): 화, 분노. 짜증이 심해져 화로 이어지는 경우.
ضيق (디끄): 답답함, 불편함. 마음이 좁아지고 짜증 나는 상태.
즉, 일상적인 "짜증"은 إزعاج(이즈아즈) 또는 انزعاج(인즈이아즈)가 가장 적절하고, 강한 짜증이나 화로 이어질 때는 غضب(가다브)를 씁니다.
이렇게 순우리말이었던 짜증을 영어, 일본어, 아랍어로 찾아봤습니다. 짜증이라는 한국어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지만 다른 나라말들에서는 감정의 정도에 따라서 단어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단어가 다르고 얼굴 생김새가 다른 다양한 나라들이 감정표현을 위해 사용하는 단어들이 그 모양새가 다른 것은 맞는데 그 뉘앙스와 발음의 느낌은 해당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또, 거의 감정단어들이 한문기반이었는데 순우리말인 것도 신기했습니다. 이제 그 감정을 느낀 저의 상황과 그에 따른 저의 표현 그리고 그 표현에 따라 주변 사람들이 느낀 것들도 나누어보겠습니다.
결혼 전에는,
짜증이라는 것이 표현된다는 것은 주로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였습니다. 부모님이 제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을 때도 짜증을 냈고요. 동생이 저보다 월등한 것을 느끼고 저보다 아는 것이 많아서 아는 척을 할 때마다 도 짜증을 냈습니다.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과제물에도 짜증을 내면서 던지기도 했고요. 부서지거나 찢어진 것을 결국 제가 다시 복구하면서도 그 시간 동안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상황에 대한 짜증, 그러고 앉아서 다시 만들고 있는 거 스스로에게 짜증을 냈고요.
짜증을 낼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눈은 짜증 섞인 표정을 만드느라 한없이 작아지고 모든 얼굴이 구겨진 우유갑처럼 회복불가의 얼굴표정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늘 울상인 친구를 보고 선생님께서 "왜 울상이냐? 아무것도 못 얻어먹은 시어머니얼굴처럼!!"이라며 편 잔을 주는 것이 기억납니다. 짜증을 낼 때마다 화를 내는 지경까지도 생깁니다. 그런 감정으로 화장실로 달려가보면 그 얼굴은 사람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행복이나 만족은 거의 느껴보지 못한 구겨진 얼굴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흠칫 놀라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무엇에 짜증을 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짜증을 낼 일이 아니었기에 제 자신이 창피해져서 돌아오곤 했던 기억도 납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짜증이 어떤 상황에서 나는지, 짜증을 왜 내는지, 짜증이라는 것이 필요한 감정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저 짜증을 냈던 것 같은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인간'같은 느낌이 듭니다.
결혼 후에는,
수시로 짜증을 내고 냈습니다. 바로 아내에 대해서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의 행동이 제가 원하는 방향도 아니고 저와 일치하는 의견도 아닐 때가 생기기 시작하니까 점점 짜증을 내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안 맞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짜증부터 냈던 것 같습니다. 짜증을 내고 그러다가 분에 못 이겨서 화를 내고요. 화를 내다보면 큰 소리도 내고요. 큰소리를 내다보면 서로가 어색해지면서 이제 말을 안 하기 시작하고요. 아내는 그렇게 있다가도 시간이 되면 아이들 모유수유를 하고 밥을 준비하고 빨래를 정리하고요. 저는 짜증을 냈다가 분에 못 이겨서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면서 계속 이어서 말을 안 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짜증을 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제가 원하는 것,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 1차적으로 거부 반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감정이 아니다 보니 짜증을 냈다가 화로 이어지고 곧이어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도망갈 곳 없는 좁은 곳에서 둘이서 아웅다웅하면서 감정싸움을 격하게 하는 양상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싸움이나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먼저 포기하고 참는 것으로 일단락되면서 언제나 여차하면 짜증을 내고 짜증을 내다가 화를 내는 것이 저였습니다.
오죽하면 자꾸 짜증을 내고 수시로 짜증 섞인 말을 하면서 생활을 하니까 "맨날 참아주니까 당신이 모두 옳은 줄 알아요? 당신은 왜 맨날 짜증을 내요! 힘들어요."라면서 아내가 여차하면 짜증을 낼 남편을 알면서도 '제발 편히 숨 쉬고 함께 행복하게 삽시다.'라는 의미로 그런 말도 했을까 싶습니다. 그 당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그 상황들이 너무 창피합니다. 왜 그리도 옹졸하고 못된 짜증쟁이로 몇 년을 살았을까 싶은 마음으로 반성과 창피함과 미안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요? 요즘도 물론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짜증을 내고 나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과 왜! 또! 그랬을까라는 생각으로 얼른 사과를 합니다. 이제는 짜증을 내서 아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날이 있다면 얼른! 먼저! 사과하는 습관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짜증을 내는 것은 만족이 없거나 고민, 불안이 넘쳐날 때 그것을 감당할 여력도 없는데 뭔가를 해야 할 상황이 밀려오면 밀어내고자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면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조금씩 바꿔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 힘이 멀리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내였습니다.
아내가 해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저에게 힘이 되면서 여차하면 짜증을 내던 것을 바꿔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수시로 짜증을 내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아내, 일단은 참아주고 상황이 진정이 되면 차근차근 서로 대화하면서 상황을 잘 풀어나가도록 기다려주는 아내, 그 아내의 존재와 아내가 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생활습관을 바꾸고 있는데 생각보다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왜 예전에는 아내 말을 듣지 않고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았을까? 너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아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 시간을 허비한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할 시간도 모자라다고요. 그런 시간을 싸우고 미워하고 짜증 내고 급기야 화도 내고 냉전의 시간을 겪으면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과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허비한 이유는 그때는 '아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내 말을 안 들었던 것이 아니고 아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늘 제 뜻대로 하고요. 제 뜻대로 하지 않는 아내를 보면서 짜증을 수시로 내고 살았던 것입니다.
'짜증'이란 단어를 가지고 제 삶을 점검하고 결혼 전과 후를 돌아보니까 민망하고 창피합니다.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도 이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렇게 저를 직면함을 통해서 더 나은 저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감정단어들을 꺼내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은 늘 힘듭니다.
알고 숨겨왔던, 아예 몰랐던,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꺼내는 시간은 특히 힘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저의 부족함을 직면하는 시간이고 직면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용기도 내고 다짐도 하는 시간이 되어서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감정단어들을 확인하면서 창피합니다.
감정적인 동물인 것은 맞는데 저는 수시로 감정에 치우쳐서 살아가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아내는 모든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가지고 속마음은 불안하고 불편해서 요동치지만 겉은 평온하고 잔잔한 호수물처럼 다듬고 가라앉히면서 더 나은 것을 위해서 생각하고 합력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백배는 더 창피한 제가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저의 단면을 꺼내느라 곤혹스럽지만 괜찮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짜증 많이 부리던 저의 부족한 모습을 꺼내느라 곤혹스러웠습니다. 사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서 어떤 것을 꺼내놓아야 할까? 어느 정도는 공개가 가능할까? 라면서 고민할만한데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또 걸러내서 글을 쓴다면 제가 100% 달라지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정확하게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가려내서 버리고 정리해야 한결 넓어지고 쾌적한 집이 되듯이 이왕 고치려고 마음먹었다면 만인 앞에서 솔직하게 꺼내놓고 고치는 노력만이 더 나은 가정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소 찔림 있고 창피하지만 솔직하게 꺼내놓고 적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자신이 부끄러운 모습만 남아서 창피하지만 더 나아질 내일, 더 많이 웃을 아내와 삼 남매를 생각하면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100개 조각 중에 두어 개 뒤집어서 고친 것 같지만 그거라도 어딘가라는 생각으로, 이런 부족한 저에 대해서도 읽고 격려해 주시는 손길 덕분에 또 다른 노력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Vitaly Gariev
distancing에서 소개하는 감정단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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