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에게.+59

아이들이 하도록 하게 하세요.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해 보는 날이었어요. 그 느낌을 종종 느끼기에 이번에도 잊지 않으려고 편지를 써 봅니다.



아이들과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와서 그 감흥을 더 진하게 느끼려고 유튜브로 촬영 에피소드나 후 토크등을 보고 있던 날이었지요.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현장분위기, 스텝과 배우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들을 듣다 보니 몇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급하게 촬영해서 어설프지만 작은 영상을 만든 날이 떠올랐어요.


"이렇게 찍어서 영상이 될까요?"

라고 묻는 질문들에 걱정 말도록 설명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스토리들에 필요한 내용이 드러나도록 찍고 그것들을 편집해서 영상을 만들어냈었지요.


그렇게 만든 영상이 물론 어설프고 부족한데 그 만들었던 과정이 나름대로는 흐뭇했고 디렉팅이라기에는 초라하지만 진행하던 순간순간이 엄청 짜릿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창작의 욕구가 생겨서 한마디 하게 되었지요.


"나도 작은 영화 찍고 싶네요. 배우고도 싶고요."

"남편."

"남편. 이제 아이들이 하도록 해줘요. "


"남편, 이제 아이들이 하도록 해줘요. 당신 말고."


그 말을 오랜만에 또 들으면서 기분 나쁘기보다는 마음에 새기고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당신이 매번 내가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마다 "남편... 남편..."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듣겠더라고요. 우리가 젊고 가능성 많아 보일 때는 내가 뭔가를 도전하는 것이 맞다 싶어서 전망 있어 보여서 돈과 시간 모두 지원해 주곤 했지요.



그렇게 당신이 마음과 돈과 시간으로 지원해 주는 것을 샘솟는 우물처럼 여기고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사면서 지냈지요. 물론, 터무니없는 허영심을 가지고 산 것은 아니지만 당장 급한 것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사는 것이 당신이 보기엔 터무니없었겠지요. 그렇다고 제지할 수도 없는 것이 고집을 부리니까요. 그렇게 지낸 시간이 15년이다 보니 돈도 시간도 체력도 모두 바람 앞의 먼지들처럼 날려버렸네요.



그렇게 날린 돈, 시간, 체력을 뒤늦게 깨닫고 나니 당신 말이 와닿습니다. 이제는 현상유지를 하면서 큰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일인데 말이에요. 자꾸 아직도 당신 말을 알면서도 뭔가를 사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일을 의욕적으로 하고 싶어 하니까 당신이 얼마나 답답하겠나 싶어요.



그 마음이 담긴 당신 말을 이제 알아들었다는 것이 미안하게 생각돼요.

이제는 큰 일 만들기보다는 필요한 일을 위해서 적절한 지출과 일 추진이 되도록 현명한 남편이 되어볼게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요.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남편 때문에

미안합니다.

결혼해서야 여자의 마음을 알고

당신과 숱하게 싸우고 나서야 아내의 마음을 알다니


그래도 늦은 감이 있지만

바짝 노력해서 지난 시간을 만회할게요.


아팠던 마음이 회복되고

마음 때문에 몸이 아팠던 시간을

빨리 회복시키도록 노력할게요.


지금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해요.

사랑합니다.




진짜 못 알아들었습니다.

아내가 늘 하던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남편, 하지 말아요."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고 아내 말을 작정하고 듣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제 고집대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때, 왜 말하지 않았어요.

이제 아내 말이 들리기 시작하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에 아내가 하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그때 지금처럼 말했는데 그때는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너무 미안했던 것입니다. "못 알아듣더라고요.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속에 메아리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남편을 보면서 얼마나 먹먹했을까? 그런 마음에 울컥했던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잘 들을게요. 당신이 하는 말.

지금은 아내가 해 주는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 하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귀한 조언으로 들리고 챙겨야 하는 말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만 문제가 종종 생깁니다. 잘 알아들었으니 아내가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이니 그대로 행동하면 될 것인데 가끔 '아직도' 제 뜻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 속이 터집니다. "내 말 듣는다면서요." 그 말을 들으면 '아차' 싶습니다. 많이 노력해야 하는 저를 또 깨닫는다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오늘도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껴서 편지를 썼습니다. 매 순간 제 마음대로 한 것이 미안해서입니다. 들은 대로 조언해 준 대로 잘 따라 해보려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쓸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unsplash의 Hoi An and Da Nang Photograp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