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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배꼽인사하는 남자

매일 또 매일..

나는 퇴근하 집에 들어가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어른들이 거실에 앉아 계시면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라고 한다. 힘이 없기 때문에 힘없이 인사한다. 그리고 마주치는 아이들에게는 천천히 '배꼽인사' 한다. 아이들이 '피식'웃으며 맞이해 준다. 나의 저녁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과도 같다.



나름대로 의식을 치르듯이 '배꼽인사'한다.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하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오면서 짜증이나 화를 내며 시작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내말로는 들어오는 표정을 보면 하루종일 어떻게 지냈는지 느껴진다고 한다.  더 이상 그런 습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배꼽인사'를 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너희들은 키가 작을 뿐이지. 한 명의 어른과 같은 존재이다. 존중할게!'를 반복하면서 한다.  



나는 처가에 들어와서 항상 깜깜한 새벽에 나가고 깜깜한 저녁에 들어오는 출퇴근이 나의 루틴이다. 의도치 않은 효과 덕분에 안쓰럽게 봐주시는 처가 어른들과 아내의 사랑 덕분에 거창한 저녁식사를 차려준다. 매일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배꼽인사로 다짐을 거듭했던 나는 창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모든 것을 쪽같이 잊어버린다.  리고, 안 하려고 했던 악습과도 같은 잔소리를 시작한다.


"야! 내일 학교 안 가는데 가방들은 왜 안 치워놨냐?"

"어른들 TV 보러 나오시는데, 거실 테이블은 왜 정리 안 해놓고 들어가니?"

"먹던 과자 껍데기는 치워야지? 머리끈은 누구 거냐?"

"야. 너는 축구하고 왔으면 축구공이랑 축구화 치워야지!!"

"소파 위에 저 옷은 누구 거냐? 입은 거냐? 입을 거냐?"


조심한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섞지 않아도 아이들은 또 시작했다는 표정으로 물건들을 치우거나 정리하면서 연기처럼 스르르 방으로 사라진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는 울상이다. 아내는 " 또 그러네. 남편"이라고 한마디 한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이게 아닌데.' 라며 나도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있는 나에게 아내는 진심으로 걱정을 해준다.

"남편, 나는 걱정이 돼요.  아이들이 사춘기 되면 당신에게 등 돌릴까 봐서요. 걱정돼요."

"요즘 노력하잖아요. 여보. 안 그러다가 또 그러네.  걱정 안 하도록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아내말대로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혼내거나 핀잔을 줬더니 아이가 좀 컸다고 아빠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내기도 한다. 나중에 해준 아이 말로는 잔소리 듣는 동안 '마음으로 아빠 욕했어요.'라는 말을 듣고 충격도 받았다. '내 아이는 안 그러겠지.'라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부쩍 키가 크더니 생각도 커가는 중이었다.



아이가 터무니없는 옷을 입으려고 하면 예쁜 말로 잘 타이르면 좋을 것을 "왜 그런 옷 입으려고 그러냐?" 라면서 나무라기도 했다.


아이가 선택을 주저할 때면 잘 기다려주다가 "아빠가 웬만하면 기다려주는데 오늘은 좀 심하다. 언제까지 망설일 거니?"라면서 기다려주지 못하고 다그치기도 했다.


아이가 씻다가 갑자기 "엄마"하며 부른다.  수건이나 갈아입을 옷을 안 가지고 들어간 것이다. 얼른 갖다 주면 좋을 것을 "야! 몇 번째야. 왜 들어가며 안 챙겼어!! 어떻게 매번 엄마를 부르냐!"라면서 나무랐다.


씻고 나온 아이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돌돌 말고 앉아서 밥을 먹으면 "수건 풀고 와서 밥 먹으면 어떨까?"라고 하면 좋은데 " 수건 풀고 와라! 으이그!!"라면서 아이에게 눈레이저쏘며 지적했었다.


나쁜 생활습관 중 10개 중에  8개는 고치긴 했는데 2개는 여전히 반복하며 실수한다. 일하느라 피곤하다며 안 놀아주고 대화는 안 하는 대신 학원 개수 상관없이 다니게 해 주고 선물 맘껏 사주는 걸로 채워주는 아빠보다 더 안 좋은 아빠인 것이다. 사고 싶은 것 맘껏 사주는 것도 아니고, 다니고 싶은 학원을 맘껏 다닐 수 있도록 돈을 쌓아두는 것도 아니고, 혼내고 다그치는 것만 수시로 하니까 더 최악일 수 있다.



 아빠가 이들을 부르면

"아빠가 뭐해주려고 그러시나?"며 설렘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왜 부르지? 아빠가 또 뭘 지적하시려고? 뭐 잘못한 거 있나?"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내게 온다. 아내가 수시로 충고를 해주면 나는 꼭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이 정도로 달라진 것도 어딘가?라고 자화자찬도 하고 아내가 격려도 해주지만 여전히 잘하는 것보다 고칠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은 정말 무섭다는 것이다. 상처가 생기는 동안 걸린 시간보다 회복하기 위한 시간은 몇 배라는 것이다.  그게 제일 무섭다. 이미 지나온 시간이라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제 상처가 조금은 회복되어서 '그런 일에도 이제 괜찮겠지?'싶었는데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면 이는 원래대로 돌아가서 '얼음'이 되는 것이다. 신경 써서 노력하고 있지만  '회복'을 위해서 할 일도 많고 애초에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많이 한다.


"회복되기 위한 시간은 상처가 나는 동안 걸린 시간의 몇 배이다. "



자체 중간점검하듯 아이들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아빠가 요즘은 어때? 여전히 무섭냐?"라는 말에 아이들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라며 대답을 해준다. 물론 그 대답이 100% 진실은 아니다. 아이들이 아빠의 마음을 생각해서 50대 50으로 대답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아빠가 삐지기 때문에 알아서 적절한 대답을 한다'라고 아내가 말해줬다. 요즘 아빠가 뭐든지 다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다고 행동하시지만 가끔씩 원래대로 화를 내며 이해하지 않고 아빠 생각대로 말하고 설득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100% '안 무서워요.'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매일 배꼽인사하며 매일 다짐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조금 더 변화되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회복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생각에 더 조바심 날 때도 있다. 이들이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간다.



나는 지금의 상황들이 찢어진 바지를 수선해서 멀쩡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느라 갖은 애를 쓰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차피 엎질러졌지만 그래도 최대한 주워 담고 얼룩진 바닥도 잘 닦아서 최대한 원상태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과정과도 같다. 그래서 이제 결혼하는 가정을 보면 부탁하고 싶어 진다. "모르고 한 말과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겉으로는 착하고 좋아 보이지만 속은 불안하고 용기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혼할 때 품었던 간절하고 애절한 사랑을 잘 기억해서 태어날 아기 때부터 정말 온유한 사랑으로 키우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예비아빠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때로는 혼자 걸으면서 '행복하고 즐겁고 자유로운 가정'을 꿈꿨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 '행복을 만들 시간에 이런 노력하느라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속상하다.'라며 자책할 때도 있다.  더 아픈 후회를 하기 전에 '지금' 하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모습이 또 대물림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 그 사랑 잊지 말자. 아이들에게도 그 사랑 잘 전해주자.'


오늘도 배꼽인사하며 저녁을 시작한다. 내일도 그렇게 하리라.


출처: UnsplashOctavian 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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