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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필요한 걸 몰랐던 남자

그만 좀

결혼하고 나서 아내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싫어했다. 

대화하다가 울고, 속상하다고 울고, 분하다고 울고 그랬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여보, 울지 마요. 나 눈물 흘리는 거 싫어해요.


 

나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었다. 아내는 의견 차이가 나서 싸우다가 울었다. " 이렇게 계속 싸우는 것도 싫고요. 이런 상황자체가 나한테 힘들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운다는데 나는 이해를 못 했다.



아내는 참는 것으로 상황을 견뎌냈었다. 더 힘든 상황도 버겁지만 일단 참는 것으로 이겨내기도 했다.  

연년생 아기 둘을 쌍둥이 유모차에 태우고 한 명은 업고 병원을 가야 할 때도 있었다. 동네 마트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이 악물고 다녔다. 하루종일 애들을 돌보느라 사투를 벌이고 잠깐 쉬다 보면 내가  퇴근했다. 잠깐의 휴식은 날아가고 나랑 사소한 것들로 싸우곤 했다.  힘든 하루를 견딘 아내는 눈물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다.  아내가 울면 또 "왜 울어요?"라고 나는 다그치고 아내는 계속 울었다. 남편이 나간 아침부터 남편이 다시 들어온 저녁까지 오로지 말 안 통하는 아기 셋을 돌보며 지친 아내였다. 하루종일 버거운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위로받아야 할 '남편'이 들어왔는데 '따뜻한 위로'는 가끔이고 사소하게 매일 다투게 되는 것이었다.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며 퇴근하자마자 지긋이 안아주는 러블리 남편이 아니었다. 



아내의 눈물이 끝나면 서로 사과하고 끝냈다.  나와 대립하다가 화해를 하고 나면 아내는 이제 '엉엉'울기 시작한다. 이미 넉다운된 몸과 마음으로 감정싸움을 힘겹게 했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마음은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아내를 안아 주며 "미안해요"라고만 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며 나와 대화해 준 아내가 참 고맙다. 


  

싸우다가 아내가 울기 시작하면 내 마음이 힘들어졌다. 화해하고 나자마자 아내가 울면 나는 더 힘들었다. 

"아! 왜 또 그래!!"라고 했다가 "아! 왜 이 사람과 싸웠을까? 후회된다."라며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가 울기만 하면 더 화를 내면서 "울지 말도록"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눈물들을 모았다면 한강의 어느 귀퉁이는 채웠을지도 모른다. 좌충우돌 결혼 5년 차에 부부상담을 하기까지 아내는 내가 볼 때 흘린 눈물보다 내가 보지 못할 때 흘린 눈물이 몇 배는 많았다고 했다.    


 

"둘이 싸움 ->아내 울고->그치고-> 화해"를 반복했던 것 같다.  급기야 모임에서 엉엉 울면서 북받치는 설움과 답답했던 마음의 홍수가 터져 나올 때는 정말 말릴 수 없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112


부부상담을 하면서 아내가 그동안 마음의 고통, 슬픔, 힘듦을 어떻게 견뎌내며 시간을 보냈는지 상담결과를 토대로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상황에 따라 흘리는 눈물을 "울지 말아 줘요"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왜 계속 눈물을 흘리는지? 어떻게 하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지? 마음속 상처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눈물이 처음에는 그냥 싫었는데 이제는 눈물은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물의 의미를 이해했더니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면 아내는 억울해하고 답답해하며 울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울지 말아 줘요."라며 무턱대고 요구하면서 계속 싸웠다면 이제는  "잠깐 중지합시다. 이러다가 크게 싸우겠어요. "라고 잠시 눈물도 흘리고 감정도 추스를 시간을 만들며 싸우기 시작했다.



서서히 예상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데 내 눈에 눈물이 쑤욱 차올랐다. 아내와 대화하다 보니 다양한 마음이 느껴지고 그 마음이 내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미안한 감정' - '아내가 감당했을 인내의 아픔에 대해'

'공감의 마음' - 여전히 참으며 감당하고 있는 아픈 마음 이해'

'사랑의 마음' - '싸워도 남편이라고 챙겨주며 존중해 주는 진심의 사랑'


이런 아내 마음들이 하나하나 느껴지면서 내 눈에 차오른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매번 서로의 마음이 대립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아내 마음이 천천히 내 마음과 포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창피한 줄 모르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도 조용히 울었다. 



그렇게 내 눈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 사건 이후부터는 대화하며 아내 마음에 깊은 공감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마음과 내 마음이 종종 같은 마음이 되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여보, 울지 좀 마요."라는 말보다는 "여보, 내가 일단 생각해 볼게요." "미안해요." " 여보, 힘들었겠어요."라는 말들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차 마시며 대화하다가 둘이 주르륵 눈물을 흘릴 때가 종종 생긴다. 벌겋게 충혈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빙긋 웃기도 한다. 아내는 "그때는 정말 왜 그랬어요?" "이제 좀 살 거 같아요. 당신과 대화를 하다니..."라며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나는 "여보, 그때 미안해요." "진짜 내가 미쳤었나 봐요." 라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비로소 눈물의 의미를 이해했다. 울기만 하면 멈추도록 무작정 요구했던 내가 눈물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눈물이 흐르도록 휴지를 챙겨주며 돕는다. 이제는 내 눈에도 눈물이 상황에 따라 흐른다. 아내보다 더 흐를 때도 있다. 



미안해서 흘리는 눈물

정말 잘못해서 참회의 의미로 나오는 눈물

아픔이 공감돼서 흐르는 눈물

내가 아파서 흐르는 눈물

힘들어서 견디느라 질끈 감은 눈에 흐르는 찔끔 눈물

아이가 아픈 것에 마음이 시리고 아파서 흐르는 눈물

너무 기쁘고 놀라서 흐르는 눈물



이유도 많고 양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다.

언젠가는 뜨겁더니 언젠가는 차갑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저 우는 것으로만 치부했었다. 



눈물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건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인생의 찐 맛을 안다."라는 레벨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눈물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그와 더불어 "공감"의 마음도 생겼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기쁨도 함께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는 안다.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산다. 그 필요를.

내 마음을 아내 마음과 포개주는 커넥터 - 눈물

" 눈물 = 공감 "

 

이 마음을 놓치지 않고 아내, 아이들과 함께 살도록 노력 중입니다. 이제는 눈물의 의미를 압니다.






더하고 싶은 글: 저의 습작을 격려해 주시는 "진짜 등단 작가"분들의 글들을 항상 꼼꼼히 읽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겪은 아픔을 담담하고 섬세한 어조로 내게 말해주듯이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도 있으십니다. 그런 글들을 읽을 때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울컥합니다. 읽는 동안 피할 수 없고 직면해야 했던 그분들의 극심한 아픔의 순간이 제 가슴속 깊숙한 곳까지 지릿하게 전달되는 느낌입니다. 아내를 만나고 눈물의 의미를 알면서 덤으로 공감까지 얻다 보니 작가님들의 귀한 글에 "진심으로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응원도 하게 됩니다. 저를 향한 격려도 감사드리며 공감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Unsplash의 Kat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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