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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공장.. 아빠

ㅈㅅㅎㅇ

"아빠. 죄송해요."

실수를 했을 때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다. 늘 그랬다.

돈을 넣으면 늘 선택한 제품을 토출 해주는 벤딩머신과 다를 게 없다.

자판기를 만든 사장님인 셈이다.



아이들이 정말 큰 잘못을 했던, 사소한 실수이던지 간에 아빠와 직면하게 되면 일단 "죄송해요"라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훈육이던지 잔소리던지 끝나면 로 달려서 도망간다.



아이들을 잘 키워 보겠다는 마음과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제어해야 하는 마음, 세 아이가 연달아 태어나서 양육하느라 지친 아내를 늘 우선순위 삼았다. 그랬더니 매번 선을 넘는 훈육을 했다. 그로인해 발생한 부작용이다. 무조건 “아빠! 죄송해요.” 라는 것이.



아이들이 동네 가게에서 장난감 총을 사 왔다. 방아쇠를 누르면 led가 번쩍번쩍거리면서 "빠빠빵~!!"소리가 났다. 아이들 수준에서는 실감 나는 미니 권총이었다. 그 안에 코딱지크기의 캔디가 몇 개 들어있었다. 그걸 서로 겨누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퇴근하고 들어오는 길에 광경을 목격한 나는 바로 "그만해! 총 놀이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은 "총, 칼놀이 안 한다고 했잖아!" 라고 했더니 바로 아이들은 "죄송해요. "라며 그냥 멈춰섰다. 지켜본 아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른들도 그 광경을 민망해하시며 지켜보셨다.



아이 둘이 슬라임이라는 '물컹이“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슬라임은 물컹거리는 특성이 있어서 순식간에 바닥에 흐르기도 하고 옷에 묻기도 한다. 심지어 머리카락에 대책 없이 튀기도 한다. 아이들이라서 충분히 그럴만하긴하나 바닥에 흘리면 다른 가족들이 불편 수 있다.



거실바닥 군데군데 흘린 것을 하필 내가 밟았다. "누가 제대로 안 치웠어? 이게 뭐야? 이렇게 되면 다 버린다고 했지!! " 낮에 슬라임 가지고 놀던 두 아이가 거실로 나왔다. "죄송해요"하며 또 고개를 숙인다. "약속대로 다 가지고 나와! 여보! 받아서 버려요." 아이들은 울상이 되고, 아내는 난감해한다. 일단 주섬주섬 챙겨 온 아이들 슬라임을 받아 든 아내는 분리배출통에 일단 넣어둔다. 조금 시간차를 두고 아내가 내게 말한다. "남편, 너무 극단적이에요. 아이들은 잘못했다고 깨닫기전에 공포감이 들어서 아무런 교육효과가 없을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말을 많이 안 한다고 한다. 담임선생님께서 학기 초 상담하면서 아내에게 해준 말이다. 집에서는 서로 싸우고 놀리고 장난치고 시끄럽고 난리도 아니다. 런 아이가 말이 거의 없다고?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었었다.



아이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본인의 탐색 속도로 분위기가 파악될때까지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 선생님으로부터 일어난 상황에 대해 해명을 하도록 추궁당하거나 거친 친구들과 있으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가만히 있는다고 했다. 나는 가정에서 겪은 상황들이 만든 부작용이라고 단정 지었다.


"더 이상 이러면 안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점검해 보고 가족 상황을 돌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실수에 관대하거나 너그럽지 못했던 내 모습 생각난다. 좋을 때는 세상에 없는 재미를 만들어가며 함께 즐기는 것 같고, 세상에 못 먹는 음식은 없는 것같이 함께 먹으면서 깔깔 거린다. 그런데, 무서울 때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죄송해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게 만드는 아빠인 것이었다. 아내 표현으로는 "너무 극과 극이에요."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아이들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들은 반에서 너무 조용하게 지낸다고 걱정된다는 우려와는 달리 축구시합 중에는 이기겠다는 승부욕 때문에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 그리고, 실수하거나 머뭇거리는 친구에게는 화도 내며 서로 이겨보자고 으름장 놓는 것도 보았다. 그런 모습도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그런 시간을 통해서 아들은 도전도 해보고 스스로 성장하는 법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지금도 축구시합을 즐기면서 크고 있다. 멀쩡하다.


둘째 딸은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따라 만들면서 즐거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것을 자랑할 때 귀 기울여 들어주는 부모 앞에서는 엄청 행복해한다. 그럴 때 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공주표정이었다. 멀쩡하다.


막내딸은 오빠 언니가 하는 것은 모조리 '도장 깨기'하려고 한다. 오빠처럼 축구화를 메고 다니면서 방과 후 수업시간에 골 넣느라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리고, 언니가 피아노를 치니까 언니보다 교재를 앞서나가려고 한동안 열심히 치더니 결국 언니보다 앞서서 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아이돌 노래가사는 모조리 외우고 안무도 전부 외운다. 보여주면서 칭찬의 박수를 받을 때면 표정이 환해지면서 얼굴이 반짝반짝해진다. 쩡하다.


아이들에 대해 점검해보니 하루 중 아이들이 기분 좋고 행복해하는 시간들이 참 많다. 그러다가 아빠가 퇴근해서 호통치며 혼내면 "죄송해요"를 연발하게 된다. 그 시간의 비중이 하루 시간의 1/10도 되지 않는데 그 영향력이 100배상이다. 그때마다 아이들 음이 쪼그라드는 것이다. 아빠에게 한번 혼나면 하루동안 즐겁고 흐뭇했던 그 많은 시간들이 풍선이 바늘 찔리듯 순간에 날라가는 것이다.



나의 모습도 돌아보고 아이들의 상황도 점검하다 보니 내 마음이 씁쓸했다. 그런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늘 내 옆에 있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여보, 내가 아이들에게 잘못하고 있는 게 많은가요?"

"남편, 당신은 아이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잡아먹을 듯 무섭게 몰아치며 혼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너무 안 좋아요." "아이들이 위축되고요. 그래서 늘 걱정이 돼요.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그 말이 요즘 더 머리에서 맴돈다. 한번 무섭고 힘들게 느낀 것들이 머리와 가슴에 잔상처럼 남아 있다 보니 조금만 분위기가 안 좋으면 자동으로 "죄송해요"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나 많은 관계 속에서도 무섭게 대하는 어른들과는 정당한 말도 쉽게 못 하고, 거칠게 대하는 아이들과는 아예 대응을 못하는 거겠지라며 단정짓는 것이다.



모든 게 갑자기 바뀔 수는 없지만 노력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무작정 혼내지않고 아이들을 타이르며 끝내는 상황들을 가끔 보기 시작한 아내가 내게 물었다.


"남편, 지금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예전에는 왜 그랬어요? “

“미쳤었나 봐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죄송해요 자판기"를 철거 중에 있다. 그리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 따끔하게 혼내기보다는 아이들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도록 기다려준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혼내려고 했던 내 마음도 다스리는 시간을 가진다. 아이의 설명이 끝나고 나면

"쿨한 척" " 포용하는 아빠인 척" 하면서 "그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 아빠도 노력할게!"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휴! 다행이다"라는 표정과 함께 "네"하고 내 앞을 쏜살같이 빠져나갈 때면 나 스스로도 "잘했다. 아빠!"라며 격려해 준다. 물론 매번 그렇게 하는 아빠는 아직 아니다. 여전히 "이놈!"그럴 때도 있다. 다만 "그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라고 말해주는 횟수가 늘어가므로 “죄송해요 자판기‘철거 속도가 빨리 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요즘이다.


출처: 사진: Unsplash의 Es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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