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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받고 싶은 아이.. 아빠

100만 원..

아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긴다.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직접 사거나 선물로 받는 것이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도 두 가지이다. 사주거나 고민하지만 못 사주는 것이다.



아이와 아이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둘째 아이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싶어서 아이폰4를 사용했지만 결국 포기했었다. 그런데, 친구들 아이폰을 매번 보고 다니다 보니까 도저히 포기하지 못했다. 아이폰을 사달라고 요청했고 가능할 경우 해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쉽사리 결정할만한 중고 아이폰을 찾지 못했다. 아이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주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제보를 접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전격 제안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지요? “ ”응! 그런데 초등학생이니까 금액이 정해져 있지! “ ”내가 받고 싶은 건 100만 원인데, 어떻게 해야 돼요? “



그렇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아이폰을 찾아보니 100만 원 정도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 못 사주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달라는 것이다.



아이가 100만 원 정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가지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금액까지 찾아보고 선물로라도 사달라는 노력에 감탄했다. 필요할 때 적극적이라는 것에도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 말을 직접 듣고 나니까 그와 동시에 두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 그래!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줄게!라고 선뜻 답하지 못하는 초라한 마음과 “내 마음도 모르고 얻을 때까지 졸라댈 텐데”라며 서운해하는 마음이다.



이제 쉽게 밀어내지 못하는 “대상’이 강력하게 우리 앞에 버티고 섰다. 아이에게 안 된다고 혼낼 수도 없고, 무조건 안 사준다고도 못하는 때가 되었다. 이미 아이폰4로 해프닝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너무 강력하다. 무려 “아이폰”이다. 여러 가지로 회유를 하고 포기하도록 설득을 해보았지만 워낙에 강력한 상대를 만났다. 여러 가지 대화로 방어도 해 보았다.



나: 친구들은 부모가 쓰던 구형 아이폰을 일단 손에 쥐어준 거야!

아이: 아니에요. 그런 애들도 있고 최신 아이폰을 사준 아이도 있어요.


나: 아이폰이 꼭 좋지는 않아.

아이: 그냥 예뻐요. 그리고, 손에 쏙 들어오는 그립감이 좋아요.


나: 사진은 갤럭시가 훨씬 다양하게 찍혀. 그리고, 펜도 있잖니.

아이:이제 펜은 필요 없어요. 사진은 아이폰이 더 색감 이쁘게 나와요.


나: 너에게 맞는 아이폰을 찾고 있는 중이야.

아이: 꼭 최신형 안 사줘도 돼요. 아이폰 12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아이: 어떤 애는 아이폰 쓰지 말라고 하면서 아빠가 그냥 아이패드를 사줬대요.

나: 그렇구나. 대단한 아빠네.


대화를 하는 듯하면서 방어를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아이는 아이폰에 대해 호감이 확고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가 더 코너에 몰리는 것이다. “무능한 아빠"라는 타이틀이 내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지는 것같다. 아이가 언젠가 우리에게 했던 말도 생각났다. “아빠. 안 사주는 게 아니라 못 사주는 거 알아요. 우리 돈 없잖아요.” 그 말을 들은 날은 정말 창피해서 숨고 싶었다. 태연한 척하면서 듣고 있었지만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화끈거렸다. 내 마음을 꺼내서 들킨 것만 같았다.



아이폰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초라해지는 이유는 중고 아이폰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폰 12 가격도 여전히 제값을 한다. 그와 동시에 비만 오면 그냥 젖어버리는 운동화를 대신해서 눈, 비 올 때 신을 수 있는 가죽운동화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예상가격은 2~3만 원대이며 디자인은 상관없이 신을 계획인데 가격을 생각하니까 쉽게 결정을 못해서 2주 이상 어플에서 “찜”과 “좋아요”를 수십 번 누르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3만 원짜리 운동화를 사느라 긴 시간을 심사숙고하는 아빠가 아이폰 12를 아이에게 선뜻 사주는 게 쉽지 않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해주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해주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아이와 부모가 원하는 것이 같을 수도 있을 만큼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커가고 있다. 이럴 때 어차피 예산이 한정적이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고 부모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도 아이들이 이미 눈치를 채고 있어서 민망할 때가 많다.



그런 민망함을 느끼며 무능한 나를 자책하기 이전에는 번듯하게 옷만 차려입으면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빠였기 때문에 지낼만했다. 거기다가 기분 좋을 때 아이들 얼굴이 빨개질 만큼 놀아주는 아빠였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지금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때 사주는 것”이 최고의 아빠이다. “ “나중에‘라고 답하고 뒤늦게 해주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나는 점점 초라해진다. 혼내서 될 일도 아니다. 타일러서 될 일도 아니다.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는 아빠”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아빠“로 되어가고 있다.



”나도 이런 아빠가 될 거라고 예상 못했다. “




“아빠가 의상을 전공하고 졸업할 때만 해도 다른 나라 가서 온 가족이 함께 살면서 이것저것 보고 듣고 느끼게 해주는 능력자 세 아이 아빠일 줄 알았단다. 이럴 줄 몰랐다 “라고 매 순간 말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계산을 해봐도 지금 당장 아이폰 12를 아이에게 사줄 수가 없다. 마치 막다른 골목 담벼락에 등을 대고 서서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자동차의 범퍼를 지켜봐야만 하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갈수록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을 할 때마다 느끼는 압박감이다.



내게 이 현실은 정말 고통스럽다. 아이가 원하는 아이폰을 당장 못 사주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의 횟수가 많아지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숨통의 숨구멍을 열어주는 것은 길을 걷는 것과 글을 조금씩 쓰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감사하는 이유는 길과 글이 나를 버텨낼 마음과 몸으로 리프레쉬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저히 100만 원 수준으로 새것 같은 아이폰을 사줄 여력이 없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들처럼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해서 초라함과 무능함을 느낀 적은 많았다. 그리고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정말 나도 이렇게 무능한 모습이 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그렇지만 아빠인 내가 쭈삣거리지말고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도록 솔직하게 대화할 예정이다. 마냥 아빠의 무능함으로 치부해서 자책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짐한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미안하다. 그런데, 함께 노력해서 내일은 더 만족한 하루 만들자. “





출처:unsplash 의 Vista w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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