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걸어 다닐 때마다 두리번거립니다. 출퇴근길에도 점심식사 후 동네산책할 때도 보이는 모든 것을 관심 가지고 바라봅니다. 때로는 보자마자 "아~ 야아!" 하는 것도 있고, 어쩔 때는 "무슨 재미가 숨겨 있을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색다른 재미를 많이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만한 것도 저에게는 재미거리이며 상상력을 꺼내주는 피스톨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들을 지어내고 감정이입도 합니다. 그럴 때 무아지경의 재미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떨 때는 작은 물건이 주인공이 되는 동화 한 편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돈도 하나도 들지 않으면서 신나는 일이라서 제게는 요즘 브런치와 함께 최고 즐거움입니다. 그런 저의 깨알 묘미를 이번에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아이 같은 마음으로 보고 느낀 대로 적었음을 덧붙입니다.
# 얼른 찍고 상상하느라 사진의 각도나 구도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저걸 보고 상상하느라 길에 서 있을 만큼 재밌었다고?"라는 마음정도로만 즐겨주시길 당부드려 봅니다.
큰사람-> 아이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239
#1 우산
장거리 지하철 출퇴근인지라 늘 졸다가 내립니다. 제 머리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풍차날개처럼 춤춥니다. 그러다가 지하철을 내렸더니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런데!! 이걸 보자마다 혼자서 "빵" 터졌습니다. 너무 감쪽같아 보이는 우산과 지하철 바닥. 모두들 출구를 향해 바쁜 걸음으로 재촉하는 것과 달리 저는 얼른 사진을 찍고 잠시 서서 즐겼습니다. 놓고 가신 분도 비슷해서 깜빡 잊고 가셨는가? 아니면 버린 건가? 누가 봐도 무심히 지나칠 만큼 바닥무늬와 우산무늬가 너무 비슷합니다. 한참 즐기고 나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보았습니다.
같이 가고 싶지 않았구나.
호피 엄브렐러.
어쩜
그렇게
비슷하니?
주인이 바빠서 깜빡 잊고 가셨나?
아니면 너무 비슷해서 놓고 가셨나?
주인 따라가지 그랬니?
'나 데려가요!!'라고 하지.
네가 너무 비슷해서
사람들이 의자에 앉다가 이제는 밟을 텐데.
주인 따라갔으면
항상 밟힐 일은 없을 텐데....
얼른
주인이 다시 와서
만나서 함께 가길 빈다.
엄브렐러.
근데.
너무 비슷해.
완전
바닥이랑 똑같아.
대단해!!
By Dd
#2 가로수와 벽돌담
골목을 걷다가 가로수를 감싸 안고 있는 벽돌담을 보았습니다. 벽돌담을 쌓아놨는데 나무가 자란 건지 아니면 나무를 고려해서 벽돌담을 쌓았는지는 모릅니다. 중요한 건 벽돌담과 나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 건너편에 서서 잠시 상상해 보고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하..
나무야
너는 무섭지 않겠다.
골목을 오고 가는 차에 부딪힐 일도 없고
쓰러질 일도 없고
기댈 수도 있으니 말이야.
수많은 벽돌들이
너를 안아주고
지켜주는구나.
나무의 한결같음과
벽돌들의 지고지순한 사랑
보는 내 마음 훈훈해진다.
나무야. 좋니?
답답하진 않고?
응. 좋아.
나무가 대답해 준다.
또, 나무가 말한다.
이렇게 살다 보니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맞춰가다 보니 내가 어느새 커버렸네.
그렇게
나무는 계속 함께 살겠다고 한다.
좋다고 한다.
은근 적응되었구나.
그게 사랑인가.
By Dd
#3 나사
산책하다가 도로에 박힌 나사옆에 자라고 있는 풀을 보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공간에 자라기 시작하는 생명의 신비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틈새 식물"이라고 합니다. 마치 나사를 의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사가 데리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잔뜩 몸을 구부려서 바닥을 찍고 나서 걸으면서 상상해 봤습니다. 의외로 이런 '"틈새식물"이 많습니다. 한동안 보이는 대로 모을 작정입니다.
어?
거기
안 좁아?
안 좁아.
아늑해.
나사군이
비바람 막아 주고
다치지 않게 도와줘서
벌써 이만큼 자랐어.
든든해.
둘이 너무 다른데
부담스럽지 않아?
전혀.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뜨거운 햇빛도 가려주고
내가 못 보는 세상 이야기도 해줘서
즐거워.
그럼 괜찮구나.
둘 다 괜찮구나.
그럼 좋은 거네.
그렇게 사는 것도
우리랑 똑같네.
By Dd
#4 의자
시골길을 걷다가 의자 두 개가 묶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다리도 부러졌고요. 그런데, 의자 두 개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부부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그. 적당히 하지.
얼마나 싸운 거야.
얼마나 밉길래
같이 앉아 있는대도
따로 보고 앉았냐.
서로 미워하지 말자.
용서하고 화해하자
어차피 어디 갈 수도 없잖아.
서로 사랑합시다.
이해합시다.
어! 부부사이 갔네.
신기하네.
By Dd
#5 풀코스
어느 건물입구 계단.
초록 소주 한 병, 생수 한 통, 젖은 담배 한 개비, 망가진 라이터 한 개
어젯밤 비 내리는 저녁의 처절한 사투였나 보다. 간밤에 누군가가 이 자리에서 풀코스를 준비했네요. 그리고 원하는 만큼 만족한 식사가 되지 못했네요. 그 처절함과 안타까움을 재료 삼아 상상 한 번 해봤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전봇대 앞 건물계단.
은은한 조명이 더 운치 있게 만든다.
계단에 앉아 목 안으로 털어 넣는
병나발의 알코올맛
꿀맛.
술이 술술.
안주대신 물을 먹으려고 했으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병나발의 위력인가?
취기의 괴력인가?
병나발의 빠른 흡수력은 매력.
덕분에 다 마시지도 못했어.
비는 오고
술은 넘어가고
물도 넘어가고
옷이 축축해지더니
목도 축축해진다.
아! 너무 급하게 먹었나.
쉬는 타이밍을 찾는다.
잠깐
젖은 목을 말려보자.
담배 한 모금으로 말려볼까나....
어이쿠
마지막 담배 한 개비
그새 젖어버렸네.
비 때문인가
돛대의 가치를 훼손하고
장초의 긍지를 무참히
밟아버린
비.
식후땡의 묘미는 이미 날아갔다.
쉴 타이밍도 놓쳐 버렸다.
라이터로 수차례 비추고 말려보지만...
장초는 젖어서 지친 몸을 일으킬 겨를이 없네.
라이터가 헬멧까지 벗으며 최선을 다했건만.
그는
라이터를 하도 재낀 탓에
손가락이 아프다.
병나발의 위력으로 손에 힘도 없다.
생수 뚜껑도 못 열겠다.
술 먹고
물 먹고
담배한테 한 방 먹고
좋다 말았네.
비는 계속 오고
취기가 빠르게 몸을 휘감는다.
이러다 계단에서 자겠어.
집에 가서
후회 없이 더 먹어야겠다.
그는
더 신나는 기분으로
비틀비틀 걸어갔을 거야.
비 오는 날
술 먹는 날
기분 좋아지는 날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자.
즐거울수록.
낯선 비와 술과 생수병
그는 집에 잘 갔을까?
By Dd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본 것들로 상상해 봤습니다. 눈 크게 뜨고 돌아다니니까 정말 볼게 많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느끼는 깨알재미가 쏠쏠합니다. 앞으로도 더 구석구석 보고 다닐 예정입니다. 생각지 못한 재미가 있어서 즐겁고 상상력도 더 풍부해지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늘 다니던 길을 다녀도 기대되고 새로운 길을 가도 기대가 됩니다. 저는 내일도 "깨알재미"찾으며 걷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읽어봐주셔서 미리 감사합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