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스승의 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들과 '감사를 잘 표현하도록' 대화하고 있었다. 어버이날은 울타리가 되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 엄마, 아빠 사랑해요." " 감사해요."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자로 적은 카드만 받아도 감동되는 날이다. 스승의 날은 선생님께 감사하도록 가르쳤다. 그런 대화도중에 큰 아이가 학교에서 만든 색다른 카네이션이라며 갑자기 공개했다. 선생님께서 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너무 공개하고 싶어서 미리 드리겠다는 것이다. 특이한 디자인이기도 했고 동봉된 손편지에는 아이 눈높이로 부모님께 감사한 내용이 수수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신기해하면서도 감동하며 아이를 칭찬했다.
드디어 사건이 시작된다.
학교에서 만든 색다른 카네이션 카드를 급공개하고 칭찬받는 아이를 보면서 둘째 아이도 갑자기 수업시간에 만든 것을 공개하겠다며 가방을 꺼낸다. 먼저 "아빠. 미안해요."라고 말하더니 카네이션이 그려진 카드를 꺼냈다. "엄마에게"로 시작하는 손 편지 카드였다. 내 느낌에 엄마 것만 쓴 것 같았다. 수줍은 듯 머뭇머뭇하면서 엄마에게 드리고는 가방에서 또 카드를 꺼내려고 한다. 주춤거리고 있는데 먼저 공개해서 칭찬받은 큰 아이가 얼른 들여다보고는 "할머니에게~ 카드네." 라며 장난을 쳤다.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아이는 얼른 수습한다며 말하기를
"아빠 것은 학교에 있어요."
"됐어. 거짓말하지 마! " 나는 갑자기 짜증을 확 냈다.
아내는 얼른 나를 말린다.
"남편. 아이가 아직 완성을 못해서 학교에 있대요."
"에~ 에~아빠 것은 안 썼대요. " 큰 아이가 약을 올리면서 분위기를 더 애매하게 만든다.
나는 속 좁은마음이 발동하여 순간적으로 버럭 화까지냈다. 이제 분위기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됐다. 그만해!!"
"학교에 있어요. 아빠. 진짜예요....."
"됐어. "
분위기가 더 이상 장난도 아니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당황한 표정들로 방을 슬며시 나갔다.
" 야!! 어버이날은 널 태어나게 해 준 아빠 엄마에게 감사하는 거야!" " 뭐냐!! "
나는 전후사정도 제대로 모르고 무작정 느낀 서운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서 혼자 남아 있는 작은 아이에게 한마디 핀잔을 더 던지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늘 하듯이 아이들 방에 누워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다음날 학교 갈 준비를 끝내고 방에 들어오기까지 나는 아이들 방에 누워 있으면서 기다렸다. 자려고 모두 누우면나는 "잘 자라"인사해 주고 방을 나왔다. 아까 상황이 잘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에게 "잘 자라"인사를 건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해해 줄 수 없는 감정동물 같다.
굿 나이트인사를 해주고 우리 방에 들어왔더니 아이가 제일 좋아한다는 캔디 하나가 내 자리에 놓여 있었다.
"미안하다고 자기가 제일 좋아해서 아끼는캔디를 올려놨나 보네요."
그렇게아내에게 얘기했다. 아내가 "그렇네요." 하면서 잠시 멍하게 나를 바라봤다. 도저히 캔디를 먹지는 못할 거 같아서 옆에 치우다가 매일아침 읽는 책 밑에 놓인 카드를 보았다.
"아이고. 이런........."
"여보. 이거 봐요. 이런..... 이런....."
'에휴.. 우리 딸이 이렇다니까. 남편."
아내는 카드를 보자마다 직감적으로상황파악이 되면서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예상이 되면서 카드를 펼쳤다. 아까 의도치 않게 공개된 카드를 열심히 지우고 "아빠에게~"라고 받는 이를 바꾸고 내용을 고쳐서 적어 놓았다. 지우개로 열심히 지운 얼룩덜룩한 자국들이 아이의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감사 내용의 맞은편에는
" 미안해요"
" 학교 가서 쓰고 있던 카드 마무리해서 드릴게요."
" 정말이에요."
" 용서해 주세요."
" 죄송해요."
라며 미안함과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포스트잍마다 적어서 빼곡히 붙여 놓았다. 그 카드를 들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아이의 여린 마음에 내가 뭘 한 거야!!'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와 엄청 센해프닝을 만들고 하루를 마무리시켰구나.' '아빠인 나는 도대체 뭐지?'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솟구치는 동시에 미안함과 용서를 구했는데 아무런 피드백 없이 잠을 자고 일어날 아이가 교차하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하며 여전히 서 있었다.
"아이가 진짜 억울해하고 속상해했어요. 상황을 제대로 아빠에게 설명하지도못할 만큼 아빠가 계속 화를 내는 분위기에 안절부절못하다가 잠자러 갔어요.진짜 아빠 카드를 학교에서 쓰고 있는중이래요."
아내는 눈물이 곧 왈칵 쏟아질듯하면서 벌겋게 부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원망과 핀잔이 가득 담긴 시선이었다.
"내일... 내일.... 내가아이와 따로 대화할게요."
"따지듯이 대화하지 말고요. 그러면 아이는 어제 상황에 대한 감정이먼저 느껴져서 힘들어요. 남편."
"엄마에게 상황에 대해 전부 들었고 오해였던 것으로 이해했다...로 시작하면서 잘 대화할게요."아내는 내게 말하는 방법까지 설명하며 거듭 당부했다. 나는 잘 대화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는 아내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멍해졌다. 아까 상황이 시작부터 끝까지 다시 쫘악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 와중에 속 좁은 말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던 내가 생각났다.하필 그 상황에 나만 서 있었다. 더 위압감 느껴지고 분위기가 살벌할만했다.
'아이고, 참... 한심하네~!! 내가 생각해도 별로다.'
아이가 놓고 간 카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카톡 보냈다.아이가 놔둔 카드를 보고 느낀 아빠 마음이 '그 시간대'로 표시된 카톡으로 전해졌으면 해서이다. 아침에 휴대폰을 열었을 때 도착해 있는 어젯밤 아빠 카톡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아이가 밤새 편한 마음으로 잠자게 사과하러 아이 방으로 갔다. 아이는 밤에 소리에 예민한 편이어서 내가 사과를 한다면 듣고 편한 마음에서 잘 수 있을 거라는 '아빠의 착각'에서 이어지는 행동이었다.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고마워"라며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으.. 응.." 그러면서 뒤척이더니 다시 잔다. 땀 흘리고 자길래 땀을 닦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아이~~ 으씨~~"하며 짜증을 냈다. 그래도 전혀 밉지 않았다. 아빠 생각이 앞선 탓에 아이 잠을 방해하면서까지기어이 사과를 했다. 아이는 아빠의 사과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을 텐데. 충분히 사과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아빠의 착각'일뿐. 아이들 방을 조용히 나왔다. 카톡도 보냈고 사과도 했다는 생각에 나도 잠을 자기로 했다. 모두를 휘저으며 불편하게 해 놓고 잠자는 아이에게 사과까지 하고 나만 모든 걸 이룬듯한 마음으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식사자리
식사하면서 어제 상황에 대한 말을 꺼냈다.
'속상했던 마음과 억울한 상황을 엄마에게 전부 들어서 이해했다'로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아이에게 말했다.
"어제.... 미안해...."
한껏 긴장되고 굳은 얼굴로 함께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아이가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더니 얼굴이 스르르 풀렸다. 입가에 미소가 살짝 올라왔다.
"다행이네." "고맙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며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휴~~~"
'포스트잇...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자!!' 마음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서툴었던 모습과 여전히 서툰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화끈거릴 때가 많다. 잘해나가다가 불뚝 튀어나오는 속 좁은 말과 표정들이 모든 것을 도돌이표처럼 되돌린다. 10번 중 9번을 잘하다가 1번 실수했는데도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아이들은 다시 움츠려든다. '거봐. 아빠는 그대로야!' 하는 표정과 '조심해. 아빠를.'이라며 서로 바라보곤 한다. 아직은 무한노력이 필요한 아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