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길을 걸어 다니며 찍고 메모하며 감탄을 합니다. 다만 한낮의 높은 기온과 더불어 강렬함을 넘어서서 뭐든지 타들어갈 만큼 불타는 태양이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고 건물그림자를 찾게 만듭니다. 땀이 줄줄 흐르지만 눈물이 아니니까 즐겁고요.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탈 때에는 옆자리 사람들에게 매우 미안함도 가지고 탑니다. 그래도, 구석구석 숨어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위트를 알아봐 주길 기다리는 많은 "깨알재미"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 재미들을 나누려고 부지런히 찍어 봅니다. 사진 속의 "그 녀석"들을 보면서 잠시 "프훗"하고 함께 웃는 1분을 기대해 봅니다.
큰사람-> 아이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안테나와 덩굴.
생각지 못한 곳에 떨어진 씨앗 한 털 때문에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덩굴을 얼른 찍었습니다. 안테나를 기준으로 둘러둘러 자라나고 있습니다. 사진 찍고 난 이후 지금은 안테나를 덮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덩굴의 운명도 계속 지켜볼 예정입니다.
이것은
운명인가
장난인가
남들은
벽을 친구 삼아
나무를 기준 삼아
자라는데
너는
통신안테나를 벗 삼아
자라고 있구나.
언제까지 자랄 수 있을까?
아마
통신계약이 끝나서 철거하게 되면
끝나겠지?
주인님이
너를 잘 이동시켜서
계속 덩굴덩굴지게 해주면
좋을 텐데.
아무튼
잘 자라 봐.
계속
관심 가져줄게
by Dd
#2 붉은 말뚝버섯
산책을 하다가 달팽이가 가는 길을 지켜보다가 우연히 풀숲에서 발견했습니다. '말뚝버섯'이라는 녀석인데 저는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녀석을 녹색 우거진 수풀에서 찾아낸 것은 보물을 찾아낸 것과도 같고, 재밌는 장난감을 찾은 것 같은 쾌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상상을 해봤습니다.
어!
딱 걸렸어!
넌
색깔도
모양도
특이해.
어디서 봐도
딱
보여.
넌
도깨비.
땅 속에 숨어서 자지만,
항상 내 눈에 보여.
이왕 숨을 거면
제발 잠 숨어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너. 술래"
그만 자고
얼른 집에 가라.
밟힐라.
#4 둑 틈.
늘 걷는 시골길 천변 뚝에 자라는 틈새 식물을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라서 이제 이파리들을 기지개 켜듯 화알짝 벌리려는 중입니다. 손가락 두 개 정도 틈에 뿌려진 씨앗이 서서히 자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공간마다 잎을 키우고 꽃까지 피는 식물들의 생장력은 가히 미라클입니다. 잠시 상상력을 동원하며 서서 관찰해 보았습니다.
아! 잘 잤다.
창문이 없다 보니
밤새 시끄러워서
일찍 깼어.
이 동네
뭐 이래.
개도 짖고
모기도 많고
바람도 불고
seed는 너무해.
창문도 없는 곳에
나를 맡기고 갔어.
요 며칠 계속 잠을 설쳤더니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해가 떴으니
오늘도 예쁘게 자라야지.
부탁이다.
굴러 떨어지지 말고
끝까지 꽃을 피워다오.
by Dd
#4. 계단옆 그녀
어느 건물입구는 인조잔디로 깔려 있었습니다. 그 옆에 벽으로 바싹 붙어서 자라고 있는 식물을 보았습니다. 그 식물은 간신히 줄기가 나올만한 정도의 공간을 비집고 나와서 이제 잎을 하나둘 키워가며 더 클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벽에 바싹 붙어 있기에 조금 안심은 되지만 혹여 불순물을 맞거나 원치 않는 발걸음에 다칠까 봐 염려도 해봅니다. 잠시 인조잔디가 깔린 계단에 앉아 상상해 봤습니다.
헤이!
인조 잔디랑 있어서 몰라봤어.
언제 왔어?
이제 2주 되었어.
많이 컸네!!
걱정이야. 너무 좁아. 한쪽으로만 커야 해서
여긴 사람들이 매우 많이 다녀.
밤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무섭더라.
조심해.
여기 사람들은 발걸음이 일정치 않아.
아무 데나 밟고 그래.
밟힐라 조심하고!!
쐐기풀의 전설을 알고 있는데..
소름.....
by Dd
#5. 우산
기사님의 스쿠터에 달린 우산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에 길을 멈추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치될 휴대폰을 장마에서 보호해 주기 위해 부착되어 있지만 휴대폰보다는 기사님이 더 흐뭇해하실 것 같았습니다. 블랙 바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음은 거친 느낌이지만 그 거친 마력에 조그만 우산이 앙증맞게 있는 것이 은근 조화로웠습니다. 손바닥만 한 우산을 가지고 상상하며 다시 걸었습니다.
수시로 비 오네.
이 변화무쌍한 날씨에
필요한 것은
바로
우산.
기사님.
우산을 아예 펴고 다니시네요.
비가 와도
내리쬐는 태양도
피하겠네요.
기사님 말고
휴대폰.
휴대폰은 알까
기사님의 사랑을?
앙증맞은 우산
기사님의 위트
길 가다가
웃고 말았다.
뿜!!! 뿜!!!
#7 샌드백
길가에 버려진 샌드백을 보았습니다. 녹슨 쇠사슬은 샌드백의 사용기간을 짐작하게 하고 수없이 터진 윗부분은 다양한 사연을 느끼게 하고요. 주굴주굴해진 아랫부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주먹과 발을 받아줬을까 하며 짐작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고철장 구석에 이럻게 버려져있네요. 최선을 다해서 운동했던 샌드백이 이렇게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잠시 상상해 보고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아이고
뭐해요?
아! 빗자루가 놀려서
혼내주고 있었어.
왜요?
이제 퇴물이라고 약 올리잖아.
아! 형님이 지금 거기 있으니까
빗자루가 그렇게 약 올렸나 봐요.
형님이나 빗자루나 똑같은 신세라고요.
그래도 형님은 한 번쯤 천장에 매달려서
세상을 호령했잖아요.
엄청 유명한 운동선수들도 만나 봤고요.
형님이 참아요.
그리고 잠시 그렇게 지내봐요.
또 모르잖아요. 우리 미래를.
by Dd
# 8 비둘기.
출근길에 횡단보도 앞을 서성이는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신호가 바뀌었고 화살표가 안내도 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본체만체 건널 생각은 안 하고 사람들이 오건 말건 서성입니다.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비둘기가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면서도 서글픕니다. 그러다가 저도 못 건너고 상상하느라 서 있었습니다.
너는 횡단보도랑 똑같은 옷 입었구먼.
근데
건너지는 않고
뭐 하냐?
응.
나는 보행지도중이야.
잘 건너도록!
신호 지키도록!
안내중이야!
뭐?
네가 보행지도중이라고?
얼른 건너가라.
그래야 친구들 만나서
먹을 거 있는 곳으로 가지.
그러다가
차에 치거나
청소부아저씨의 빗자루 맞는다.
사람세상 쉽지 않아.
조심하고 다녀.
by Dd
#9 일회용 화분
건물 사이를 요리조리 걸어 다니다가 빨강 노랑 일회용 화분이 버려진 것들을 보았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부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또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내려다보며 상상하다가 지나갈 차 때문에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길에 서서 그러다 보니 조심하긴 해야겠습니다.
어이!
얼른 건너와!
우리 가야 돼!!!
아유! 못 걷겠어요.
그리고, 못 건너겠어요.
무서워요.
아무렇지도 않아.
건너!!
어!! 어!!
아예 드러누웠네.
여보!!
여기서 이러면 안 돼!!
아유! 모르겠어요..
힘들어요.
by Dd
이렇게 길을 걸어 다니며 여전히 또 찾아봅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보니까 재밌어서 걷게 됩니다. 그리고, 땀도 매우 많이 흘립니다. 휴대폰의 화질도 점점 욕심이 나기도 합니다. 구도는 포기했습니다. 전문가의 손길보다는 그 피사체가 주는 느낌만 메모하는 것이라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는 재미있습니다. 골목이나 길 위에 보이는 것들이 "깨알재미"를 주니까 하루하루 벌어지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 있더라도 "1초 푸훗"하고 웃으며 날려 보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가 "포켓몬"을 잡고 다니는 느낌 같기도 합니다. 저의 소소하고 깨알 같은 재미를 함께 나눠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진행해 볼 겁니다. 혹, 길가다가 어디선가 구석에, 길바닥에 사진 찍고 있는 저를 알아보신다면 "커피 한 잔"사겠습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