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외전 (1)

C-section 1st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외전이란? 

아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 애쓰고,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위해 해주지 않고 엉뚱한 것들을 해주느라 마음 쓰고 노력하느라 시간을 보낸 남자, 아빠가 되기 전에 대한 스토리이다. 

왜 그렇게 마음과 몸과 열정을 다해서 '엉뚱한 일들'을 위해 애썼을까? 가정이 시작되고 정말 무릎 꿇고 감사하며 진심으로 감사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열정을 다한 것이다. 다만,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 몰랐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가정이 시작되었을 때 다짐했던 것들을 엉뚱한 방법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인 것이다. 



나는 아이 셋과 살고 있다. 

나의 아내가 큰 용기를 내어 출산을 세 번이나 감당해 줬기 때문에 5인 가족이 구성될 수 있었다. 매 순간마다 정말 눈물, 콧물 섞어 엉엉 울며 "평생 사랑할게요. 평생 감사하고 존경할게요."로 다짐했다.  



아내는 딸 2, 나는 아들 2인 형제관계로 평생 다른 환경에서 성장 후 만났다. 부부상담 때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부모님들과 당사자들도 너무 다른 구조와 환경에 살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아내와 첫 만남에서 자녀 세 명을 낳고 싶다고 무턱대고 선언하였었다. 첫 만남에 그런 포부를 드러내는 남자를 바라보며 "요즘 세상에 설마?" "무슨 이런 생각을 하지?"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랬던 우리는 5개월여 만에 결혼을 했다. 

우리는 신혼여행 후 첫 아이가 생겼다. 

첫 출산이라서 1인 분만실로 예약했다. 예정일에 맞춰 준비된 환경과는 달리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몸도 시간이 흘러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무려 12시간을 진통과 멈춤을 반복하면서 두 사람의 애타는 마음과 양가 어른들의 기다림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오후에 들어갔는데 밤을 꼬빡 새우고 유도제도 맞아가면서 계속 밀려오는 극심한 진통도 견딘 아내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다.  오로지 첫아이 자연분만을 위해 극심한 통증을 견뎠고 아기가 듣는다는 얘기에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고 이를 꽉 물면 나중에 이가 다 망가진다는 얘기에 이 꽉물어보지도 않으면서 고통을 12시간 견딘 아내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었다. 간호사들의 수시 촉진도 견디면서도 아내는 자연분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내가 정신을 놓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며 아내의 진통 호흡을 돕고 있었다. 이미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말없이 흐르다 멈추기를 수차례 반복했었다. 내가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출산이었던가!~이럴라고 임신하고 출산하자고 남자가 당당히 시작하자고 했던가?'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가며 아내 손을 잡고 있었다. 



아내가 진통이 올 때면 출산을 도와준다는 호흡을 잊지 않도록 옆에서 말해주곤 했다. 

"여보, 이렇게 호흡해요. 협.. 협.. 흡.."

"바람 좀 불지 마요. 아파요. 침대 툭 툭 치지 말아요. 아파요." 호흡을 잊지 않도록 도와준다며 호호 후후 들숨날숨 같이 해주는데 나의 호흡 바람이 몸에 닿을 때마다 통증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애타는 마음에 잘 손을 꽉 잡고 바라봐주다가 무릎으로 침대를 계속 치는 바람에 통증을 더 아프게 한다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만큼 모든 촉각들이 곤두서있었다. 한없이 진통을 감당하고 있는 아내 곁에서 정말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무용지물인 내 모습으로는 눈물만 소리 없이 계속 흐를 뿐이었다. 



자녀 계획과 출산준비 그리고 주차별로 함께 병원 다니며 격려하며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출산의 순간만큼은 아내가 오로지 혼자 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 순간은 오로지 아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극심한 고통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여보, 내가 잘할게요. 진통도 잘 견뎌주고 출산도 잘해봅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고백이 저절로 나오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고백이 입에서 술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특히 1인실이라서 우리 둘이서 감당하고는 있지만 나는 손 잡아주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이상 힘을 주거나 진통을 견딜 힘도 다 빠진 채로  12시간을 꼬빡 채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잠시 쉬셨다가 오셔서 최종 의사결정을 하자고 하셨다. 마지막순간에도 산모가 최종결정을 하게 해야 하는 거라면서 "더 노력해 보실지? 수술을 하실지? 결정하세요."라고 제안하셨다. 간밤에 몇 차례 제안을 받고 계속 노력해 보겠다고 했지만 12시간을 꼬빡 채우고 나니 이제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정신을 놓칠 정도였다. 더 이상 불규칙적으로 다가오는 진통을 견딜 여력이 없었다. 아내는 최종  "C-section"이라는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첫아이 출산 때 절대 수술은 하지 말라는 많은 출산선배들의 조언을 들었기에 수술을 피하려고  12시간을 젖 먹던 힘까지 끄집어내며 버텨봤는데 결론적으로 전혀 자연분만단계로 순차적 진행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울면서 이제 더 이상 고통을 겪지 말자고 했다. 



아내의 결정이 있고 나서 나는 밖에 나가서 서약서를 작성했다. 수술에 대한 서약, 수술 후 진통제 추가 처방에 대한 결정들을 진행했다. 다시 돌아오니까 아내는 걸을 힘도 일어설 힘도 없어서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바로 휠체어에 '실려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분만실 문 앞에서 수술실로 축 늘어진 아내를 태워서 들어가는 휠체어의 뒷모습을 보는데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몇 번 눈물을 닦는 사이 아내는 이미 들어가 버렸다. 



들어간 후 나도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어서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냥 바닥에 주저 않았다. 하염없이 " 수    술   실" 글자만 반복해서 읽으면서 마음으로 기도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응애애애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고요했던 분만실과 수술실에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울려 퍼지는 힘찬 울음소리에 나는 또 울었다. 12시간을 극심한 진통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오지 않던 아기가 몇 분 만에 나오다니 너무 허탈했다. 그리고, 눈물이 주루르르르르르르 흘렀다.  수술실 밖에서 "수 술 실" 글자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얼른 잘 출산하게 해 주세요."라고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여보... 고생했어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잠시 후 초록색 수술타월에 쌓여서 정말 핏덩이 아기가 울면서 간호사 품에 안겨서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 xxxx와 xxx님의 아기입니다. xx킬로이고요. 손가락, 발가락 모두 정상입니다. 한번 안아 보시겠어요?"라는 간호사님의 제안에 울면서 아기를 안아 보았다. 



뒤이어 덜덜 떨면서 침대에 실려 나오는 아내를 만났다.

"여보, 고생했어요. 너무 고생했어요.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

"추워요. 추워요. 아파요. 아파요........ 아..... 아........... 으....."

더 이상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너무 아파하고 있는데 마취가 깨어야 회복실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회복 중인 아내는 입술이 덜덜덜 떨리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얼핏 감은 눈가에서 눈물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기가 건강해요. 큼지막하게 태어났어요. 안아 봤는데 잘 생겼어요. 고마워요."

"으으으으으응으으으으으응" 입술을 덜덜거리고 이가 딱딱딱 부딪히며 대답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마음이 정말 찢어지고 아팠다. 



"여보, 존경해요. 사랑해요. 출산한 여자는 모두 존경해야 돼!! "라고 나는 말했다.



아내가 이제 슬슬 정신을 차려가고 있었다. 마취도 풀려가기 시작했다. 아내와 회복실로 이동했다. 회복실로 필요한 것들을 옮기고 아내가 잘 눕도록 준비해 줬다. 아내 침대옆 온돌 바닥에 내 자리를 마련했다. 아내는 꿰맨 자국이 잘 아물어서 방귀가 나와야 식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래야 소변줄도 뽑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내 옆에 조용히 강아지처럼 앉아서 그저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그냥 아내 얼굴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양가 어른들이 계시지만 내가 평생 감사하는 의미로 일주일 내내 옆에 있으면서 수발들기로 했다. 평생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첫아기는 그렇게 12시간을 거쳐서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진행이었다. 



첫아기는 딸을 원했는데 아들이 나왔다.

정상분만일 줄 알았는데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결혼기념일에 출산한다고 놀랬는데 결혼기념일 다음날이 아이의 생일이 되었다.

 


앞을 알 수 없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했던가.

첫 출산을 통해 나는 결혼식 때 누구나 요식행위처럼 우렁차게 '네'하던 고백이 아니라  

진정으로 


"여보, 당신을 몸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할게!"


라고 찐 다짐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진정으로 가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부부가 되었다.






이렇게 힘들게 시작된 첫 아이에 이이서 또 계획을 진행하게 되는데...... 



 

출처: UnsplashJonathan Borba




작가의 이전글 눈물이 왈칵했던 지하철..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