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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외전(2)

C -section 2nd

 이 외전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서 5명 가족이 된 것에 대해서 다시 찬찬히 되짚어 보고 싶었다. 다른 가정들도 거쳐간 것을 유별나게 느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 덕분에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이 여전히 한결같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랑 표현 방법이 서투르고 엉뚱했던 것 때문에 지금도 수정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번 '외전'을 차근차근 되새김질하듯 적어 보면서 다시 그때 감정과 다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내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 덕분에 아이 세 명과 함께 살고 있 지금에 대한 감사가 아내에 대한 사랑이 변질 없이 지속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제안한 자녀계획이 세 명이었다. 

이제 작은 솜털아한 명이랑 살고 을 때였다.



  12시간 진통 후 제왕절개수술 후 아내의 몸과 마음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아내는 배의 수술자국이 아직 아픈데도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아물지 않은 배 위에 수유쿠션을 놓고 엄마도 아기도 처음이라서 어색하지만 서로 열심히 노력하며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사랑이었다. 가슴을 내놓고 젖을 물리는 아내와 아기의 모습은 딴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수유하는 모습은 모성애의 결정체, 햇빛아래 천사와 큐피드의 만남"같았다.  


나는 수유를 마친 아기가 혹시라도 토하면서 숨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트림을 시켰다. 아내가 쉴 수 있도록 아기를 잠시 안고 그대로 재우기도 했다. 아내가 차츰 회복되면서 수유 횟수가 늘어나고 아기와의 교감이 익숙해지면서 서너 달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은근슬쩍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세 명 낳기로 했는데 산모나이 40세 넘으면 힘들대요. 세 명을 낳으려면 바쁘겠지요?" 

"남편, 첫애 낳을 때 너무 힘들었고 돈도 예상외로 많이 썼어요. 아직 몸도 정상아니예요. 엄두가 안 나요."

"아기 혼자는 평생 외로울 거예요. 그리고, 적어도 세 명이 돼야 모두가 행복할걸요?"

"남편, 수술로 출산했어요. 이제 서너 달 지났어요. 벌써요? 수술실은 너무 무서웠어요. 혼자 감당하기가."

"........................"


나는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목표만 지향하는 그리고 종족번식만을 추구하는 동물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뜨끔한 느낌을 받았다. 



 


퇴근길


퇴근길은 지쳤든 안 지쳤든 터덜터덜 걷는다. 그게 제일 편하다. 그런 발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단지 내 놀이터를 지나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 어떡해요?"

첫마디에 나는 ! 직감이 왔다.

"예? 왜요?"

"몸이 뭔가 이상해서 체크했더니 두 줄이에요. 아직 첫 애 수유 중이고 몸도 회복이 안 되었는대요." 

"그러게요. 나도 극도로 조심했는데요...."

"어떻게요.(훌쩍훌쩍)" 전화기 너머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여보. 일단은 진정하고 내일 병원 가서 확인해 보기로 해요. 집에 거의 다 왔어요. "

나도 진짜 당황스러웠지만 나보다 더 혼란스럽고 걱정이 앞서는 아내 얼른 안심시키고 싶었다. 

"당장은 그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난 이제 수술밖에 안 된다고 해서  무서워요. 이번에는 맨 정신으로.."

"그러게요. 일단 내일 병원 가기로 해요."

"(엉.. 엉).."

"............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얼른 올라가서 그저 아내를 안고만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바로 병원 가서 진을 받았다.

"임신 맞대오. 남편. 첫 임신 후 재임신 타이밍을 계산해 보시더니 의사 선생님도 놀라시네요."

"미안해요. 할 말이 없네요." 



  일단 또 임신했음을 양가 어른들께 얼른 알렸다. 술로 출산하고 아직 몸이 많이 회복되지 못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임신한 것에 대해 양가 어른들 모두 걱정 가득한 말씀만 하셨다.   임신한 것에 대한 축하보다 "아이고, 어쩌니?"라는 말씀이 앞서시는 게 당연하다.  



  이미 시작된 현실을 인정하고 는 제일 먼저 노트를 준비했다. 첫째 아이 때 임신-출산 일기를 내가 썼다. 그게 아내와 아이가 컸을 때 좋은 선물일거 같아서였다. 매일 아내가 어떤 감정이었고 무엇이 힘들었는지, 뭘 먹었고 뭘 먹으면서 힘들어했는지에 대해서 적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으로 임신 확정부터 출산전날까지 적었다. 이제 두 권째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점점 더 힘들어했다. 갓난아기를 돌봐야 해서 낮과 밤이 바뀐 아이에게 맞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낮과 밤을 따박따박 지키며 사는 어른이겨야 했다. 그 와중에 뱃속의 아이는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에 감정기복도 심해지고 컨디션도 매번 달랐다. 식습관도 예측 못한 음식에 거부반응이 나오곤 했다. 덩달아 남편인 나도 입덧을 해서 음식을 같이 못 먹는 사태도 생겼다. 거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임신 때 잘 먹여야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재정도 궁핍해졌다. 그 난리통에 나는 일한다 계속 출근 퇴근 꼬박꼬박 하고 있었다.



  아내는 감당할 선을 이미 넘겨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버티며 살았다. 틈나면 내가 돕는다고 하지만 원체 서투른 남편의 손길은 역부족이었다. 그 시기에 우리는 재정적으로 힘들어져서 아내는 맘껏 먹지 못했다. 본인도 못 먹는데 아기와 뱃속 아기의 영양을 걱정하며 엉엉 울기도 했다. 아이를 임신했는데도 체중이 총 6kg밖에 안 늘었다. 아내는 체력이나 마음으로나 매시간 한계에 부딪쳐 지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아내는 나의 땀냄새까지 느껴져서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요즘에 내게 얘기해 줬다. 원래  나의 땀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신기하다고 했던 아내였어서 나도 매우 놀랐다. 



  내가 출근한 낮에 아기가 모유를 먹고 낮잠을 잠깐 자게  될 때면 

아내는 혼자 조용히 우는 도 있었다고 했다. 너무 힘들고 서럽기도 했고, 또 임신 중이라 기복 심한 감정을 추스를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고립된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자리 잡는 중인 태아를 위해 조심하면서 동네 마트를 다녀와야 하기도 했다. 첫째 아기 예방접종 때문에 병원도 가야 했다. 점점 더워지는데 집은 에어컨도 없어서 찜통이었다.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변변한 임신복도 사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소한 일들로 나와 다투는 날에는 그냥 최악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견뎌준 아내가 눈물 철철 나도록 고맙다. 



  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서 둘째 출산할 날이 다가왔다. 

첫째를 수술로 출산했기 때문에 다음번도 제왕절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아내가 마음 편한 곳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아내가 결정한 곳은 첫아기를 출산한 병원이다. 익숙한 병원, 익숙한 여의사분께 하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에 만던 여의사분은 계시지 않았다. 남자 선생님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수술하는 것도 그렇지만 새로남자 선생님을 너무 힘들어했다.



  출산 당일이 오고 말았다. 

출산에 대해 설레고 떨리고 축하할 준비를 하기보다는 걱정이 많이 앞섰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는 모든 과정을 맨 정신에 해야 한다는 것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일 아침 묵묵히 시작했다. 나도 경건하리만치 조용히 돕고 준비했다. 첫째 때는 거의 혼절해서 휠체어에 실려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맨 정신에 걸어서 들어가야 해서 아침부터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근처 어른들께 잠시 맡겨 두었다. 



  차 시동을 걸었다.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수술이 끝나고 나면 회복하는 동안 극심한 추위와 공포심과 아픔까지 밀려온다. 일주일 꼬빡 화장실 다니기도 걷기도 힘들다. 수술자국도 극심하게 아프다. 이렇게 있다가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까지 드는 시간을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해서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냥 침울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뱃속의 아기가 엄마의 감정을 모두 느끼기 때문에 출산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감정조절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잠잠히 차에 앉아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둘째를 낳자고 제안한 내 마음에 죄책감도 들었다. 운전하는 내내 숙연하게 조심해서 운전했다. "수술 잘 끝나고 잘 깨어나서 함께 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며 다독이고 수술실 앞으로 안내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수술실을 걸어서 들어가기 때문에 아내는 더 무서워했다. 주춤거리며 애써 용기를 내는 아내를 문 앞까지 잘 안내했다. 아내가 들어가자 수술실 자동문이 닫혔다.

"스르르 착 착"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응..... 애... 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건강한 공주님이 태어났다며 간호사분이 아기를 안고 나오셨다. 이번에 아기는 신기하게도 이미 머리가 듬뿍 자라서 나왔다. 마치 잔디인형처럼 머리가 풍성하게 이미 자란 채로 나온 것이다. 그저 감사하게 안아보라는 안내에 따라 또 가슴에 꼭 안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헤어졌다. 



잠시 후,

  기다리던 아내가 침대에 눕혀져서 나왔다. 또 턱을 덜덜거리며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아내의 감겨 있는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첫째 때 가스마취를 흡입했던 터라 목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번에는 그것이 반영되어 마취주사로 잔행 되어서 다행이었다.

"여보,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보자마자 나는 눈물먼저 흐르느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꽉 찬 뜨거운 눈물이었다. 



"너무 무섭고 추워요. 으으으.. 추워요" 

  아내는 비몽사몽 헤매기도 하고 얼른 깨어나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아내 손을 꼭 잡아줬지만 아내 손은 힘없이 내 손에 잡힐 뿐이었다. 마음이 또 울컷했다. 너무 미안했다. 

"너무 아파요. 아아. 저기 뭐예요. 아파요." 이런! 잠깐씩 헛소리도 한다. 아직 마취가 덜 풀렸다고 한다. 



  침대 옆에 서서 마취가 깨길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찢어지고 찢어지고 찢어지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아내 역시나 고통을 나눠줄 수 없기에 무용지물 같은 남자가 한스러웠을 것이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런 대화를 하며 기다리다 보니(대화라기보다 나의 고백과 다짐을 늘어놓으며 아내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남자의 푸념시간이었다.)  드디어 아내가  마취에서 거의 깨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젠 익숙할법한 회복실로 안내받았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지고 나니까 아내는 잠에 스르르 빠졌다. 나는 조용히 또 침대 밑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조용히 앉았다. 또, 일주일을 내가 수발들기로 했다. 이건 내가 꼭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갚아야 할 몫이자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천천히 회복이 되어갔다. 조금 걷기 시작하면서 둘째를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잠깐이지만 둘째를 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너무 이쁘고 행복해 보였다. 정말 손도 못 대는 수술자국을 한 채로 둘째에게도 수유를 해보세요라는 제안에 망설임 없이 시도하는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모성애는 위대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둘째는 딸이라서 그런지 아내가 더 조심하기도 하고 귀여워하기도 했다. 머리가 풍성해서 매번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 첫째 아기가 어른들과 가끔 병실을 방문했다. 첫째는 엄마랑 만나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번 울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엄마 배 위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나는 엄마가 "아야"한다며 말렸지만 아내는 말리지 말라고 했다. 둘째가 갑자기 생긴 바람에 모유수유를 하다가 중지했던 터라 첫째는 엄마 품이 늘 그리웠다. 아내는 배가 아픈데도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나는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존경할 수밖에..



  진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출산을 두 번이나 감당한 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초월한 천사 같았다. 범접불가의 아우가 느껴지는 모성애가 풍겼다. 수술자국이 몹시 아픈데도 엄마 품을 그리워하며 파고드는 아기를 꼭 안아주었다. 뒤뚱거리며 배가 아파서 한 걸음씩 발을 질질 끌며 간신히 걸어서 신생아실로 갔으면서도 아기를 만나면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앉아서 한참을 먹인다. 많이 못 먹였다고 아쉬워하면서 또 발을 질질 끌고 심호흡하며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매번. 



  두 번째 출산에도 느낀 것은 역시 똑같았다.

인생이 늘 그렇듯이 예상할 수 없고 계획할 수 없었다. 

아내의 소원대로 첫째 이후에 시간을 두고 싶었지만 임신은 갑자기 또 찾아왔다. 

둘째는 첫째처럼 아들이었으면 했는데 딸이었다. 

출산일인 생일도 우리 계획에 없었다. 

둘째 생일은 "화이트데이"로 정해졌다. 

첫째 생일은 "결혼기념일 다음날"이다.

까먹을 수도 없고 특별하다. 

여담이지만 아내 생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우리 생각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인생이 그렇듯 인생의 시작인 출산도 똑같다.  예측도 계획도 불가하다."
 



  그러나 예상 못한 고통시간들 너무 많이 거쳐야 한다. 또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또 별거 아닌 거같이 느껴진다. 적당한 망각도 일부러 있나 보다. 금이야 이때를 생각하면 그냥 대화할만하다고 아내가 말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었다. 거의 회복되어 퇴원을 하루 앞둔 날에 

"사랑해요. 존경해요. 그리고, 출산을 경험한 엄마들을 모두 존경할게요."


"그.. 래.. 요."



  출산 두 번으로 아내의 하얗고 고왔던 배에 수술자국이 두 개라서 더 길어지고 더 두툼하게 되었다. 아내는 수술자국이 아프기도 하지만 두툼해진 자국에 마음 힘들어했다. 그리고, 퇴원을 하고 또 일상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기어 다니는 아기와 누워만 있는 아기와 어른이가 함께하는 일상과 아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여보님." 
진심이에요.






  내가 거짓말 보태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임신했을 때, 출산했을 때, 애들 다 낳고 갑자기 몸이 불었을 때 모두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항상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나는 아내의 모습이 달라질 때마다 나름대로 아내의 매력을 다르게 느꼈다. 지금도 여전히 아내는 매력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내를 사랑하고 열정을 다해 노력하나 보다. 이제 방향과 방법을 수정하고 있어서 조금씩 아내가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그런데, 다.

우리, 아니 내가 제안한 자녀 계획은? 

세 명이다.


아들 그리고 딸이 세상에 나왔다.

그렇다면...............



출처: UnsplashJonathan Bor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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