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속도
비가 온 다음날에는 언제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아침이라서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오고간다. 동네 작은 공원에서 어린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계속 엄마를 앞서 나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이의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따라가던 엄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떠똑 가자. 떠똑 가자."
"응. 어디? 그래. 가보자~~“
엄마는 아이를 향해 웃어주면서 방향을 바꿔서 아이가 말한 곳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본 나의 머리에 “띵”하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이 어릴때 함께 걷고 놀던 나의 옛날 모습이 떠올랐다. 쉬는 날이면 아내를 쉬게 해 주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강변이나 동네를 걸어 다녔다. 강변을 걸어 다닐 때는 초록색 산책길을 따라서 걷기도 하고 유모차에 태워서 신나게 밀어주기도 했다.
아이가 뒤뚱거리면서 혼자 걷다가 넘어질것같으면 얼른 뛰어가서 잡아주기도 했다. 아이들 손을 잡으면 한 움쿰에 잡히지도 않아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미니어처 인형같아서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고 무엇이든지 맞춰주고 싶었다.
"떠똑 가자. 아빠빠... 떠똑."
" 응? 어디로? 모가 궁금해? 천천히~~ 다칠라!! “
빙긋이 웃으며 뒤뚱거리는 아이를 뒤따라주던 아빠였다. 은근 친절하고 상냥한 아빠였다. 그랬던 나의 모습들이 잠시 떠올랐다.
열어놓은 수도꼭지처럼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는 아이들이 뒤뚱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컨디션 안 좋은 내가 뒤뚱거리다가 툭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넘어질뻔하기도 한다. 아이가 넘어질까봐 손을 잡아주거나 앞을 먼저 확인해줄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아빠가 미쳐 못 본 것을 먼저 보고 아빠를 조심시켜주는 아이들이 되었다. 이제는 호기심의 대상이 풀이나 신기한 돌멩이가 아니다. 저멀리 보이는 아이돌그룹의 새로운 굿즈, 새로운 악세사리, 요즘 핫한 디자인 옷, 새로운 시즌 축구화들로 호기심의 대상이 바뀌었다. 아이들이 많이 컸다. 순식간이다.
"아빠. 저기 파는거 보러가자. 가요!!“
"아니! 안갈꺼야!! 저거 별로인데? 가지 말자.“
“……………….”
이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같이 보러가자고 졸라도, 아이가 보고만 오겠다고 해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늘 ”왜 고약했을까?“ 싶다.
아이는 몸과 마음이 커가고 있고 아빠는 점점 나이들어가고 있다.
아이는 궁금한 것이 점점 많아지고 아빠는 점점 아는 척을 많이 한다.
아이는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아빠는 점점 못하게 하는게 많아진다.
아기일때는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저지를 많이 당한다.
아빠는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맨날 방해를 한다.
커가는 아이와 살고 있는 아빠는 지금 이러고 있다. 지금은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정작 가정에서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맨날 이런 말을 달고 산다.
"너에게 도움 안 되는거라서 못하게 하는거야. 다 때가 되면 하게 된다.“
아직도 아빠 기준으로 “좋고, 안 좋고”를 판단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좋고, 안 좋고”를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주지 못했다.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는데 여전히 “뒤뚱거리는 아이”로 생각하고 염려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 나이에 맞게 대해주지 못하고 여전히 “우리 아이들”로 뭉뚱거려서 생각하는 것도 있는 것같다. 자유롭게 의사결정하고 이제 도전해볼 나이가 되어가는데, 테두리안에서 감아준 태엽수만큼 돌아다니는 인형들로 만들어놓은 것도 같다. 아침부터 “반성의 시간”이 되고 있다.
아침시간에 킥보드 타는 아이와 엄마를 보다가 생각난 것들이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아이는 키가 커갈수록 생각도 자란다. 그러면서 생각과 행동의 폭이 갑자기 넓어진다. 아빠는 키가 더이상 크지 않고 생각도 더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의 속도를 맞춰주지 못하고 슬슬 뒤쳐지기 시작한다. 나도 이제 시작된 것같다. 최선을 다해서 속도와 감성을 맞춰주려고해도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격려해주려고 한다. 혹여 생기는 문제를 잘 해결해주는 아빠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다보면 아직은 “안돼”가 “해봐”보다 많다고 한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발을 맞추고 눈높이를 맞춘 생활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는 아침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 10여분 이상을 공원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그래도 뭔가 달라져야 하며 그런 모습을 통해 또 다른 회복을 꿈꿀 수 있어서 좋다.
"떠똑 가자."
내게는 참 소중한 말이 되었다. 그 말때문에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들의 성장과 맞춰서 아빠의 생각도 성장하도록 노력해볼 것이다. 아이들을 나의 자전거로 키웠고 아이들이 지금은 지하철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면서 그 옆을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아이들 성장속도에 맞춰서 부모로써 함께 하기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부터는 사춘기 자녀를 위한 책들도 찾아보면서 더 나은 아빠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떠똑" "떠똑"
출처: unsplash의 Demid Dr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