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간식거리를 사러 동네 가게로 향하는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흥겹게 대화하며 걷는 동안 나의 슬리퍼도 흥겨웠는지 ‘쩔떡쩔떡’하면서 요란했다. 아이들은 아빠 슬리퍼는 "쓰레빠"라고 말하며 웃었다. 무슨 간식을 먹을 것이며 얼마나 사줄 것이냐에 대해서 떠들면서 걷는 중이었다.
휘이이잉.....
차가 다가온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우우 우우웅.
마치 눈이 쌓인 슬로프를 자연스럽게 미끄러져가는 스키처럼 우리 옆을 스르륵 지나간다. 그리고는 벌써 저만치 앞으로 나아간다. 내 차는 ‘부우웅~’하면서 힘을 내야 지나가는데 특별한 소리와 반동없이 ‘스르륵’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순간 나를 일제히 쳐다봤다.
"아빠! 뭐예요? 저 차는? 왜 부릉부릉 안 해요?"
"응. 전기차야. 기름 먹고 부릉거리지않고 전기 먹고 스르륵 움직여. "
차이점만 설명해 주면 되는 정도로 하고 다시 간식 사러 가는 길을 재촉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는 만큼 다양한 경험들을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발전 속도에 맞춰서 제공해주지 못하는 내게는 굴욕모드였다. 그날 나름대로 아이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차가 부릉부릉 거리지 않는다고? 그런 차가 있다고?’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면서 간식가게로 들어섰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내 차로 다 같이 나갈 일이 생겼다. 나는 차를 주로 지하주차장에 세운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방송을 수차례 듣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진출입로로 늘 내려가곤 한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지하주차장을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늘 “아빠! 같이 내려가면 안 돼요?”를 종종 묻는다. 그날은 지하주차장에 다 같이 내려가자고 아이들에게 허락해 줬다. 다 같이 우루룩 내려가서는 차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요즘에는 며칠에 한번 차를 운전하기 때문에 늘 주차하는 구역이 아니면 찾느라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차를 찾게 되면 일단 차량 리모컨을 한번 눌러준다. 그러면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것처럼 주차된 차의 깜빡이가 수차례 점등된다. 주차된 차로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갈 때쯤 차량 리모컨을 한번 더 눌러준다. 그러면 양쪽 백미러가 ‘징이 이 잉~“하며 서서히 펴진다. 마치 경직된 자세로 스탠바이 하던 로봇이 출동을 위해 기지개 켜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자동차의 옵션 기능에 상당히 재밌어한다.
잠깐의 재미를 느끼면서 즐거워진 아이들과 함께 차에 탄다. 승용차 뒷좌석에 초등생 3명이 타는 것이 늘 여유롭고 편안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상황에서 지금은 참아줄 때라고 가르치고 있다. 비좁기도 하고 서로 부딪히면서 불쾌하다고 하며 싸우는 게 일상 다반사이다. 아직 아날로그적 방식인 내 차의 키박스에 키를 넣고 돌린다. 늘 그렇듯이 차는 "부르~으응"하면서 이제 출발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늘 하던데로면 “아빠!! 출발!! 가요!!” “ 아무 데나 가요.”했을 아이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 우리 차는 왜 이래요?" (나는 너무 슬펐다. 내차는 휘이이이잉하는 전기차가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차량의 시동을 기분 좋게 걸었던 내 마음이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며칠 전 전기차 소리가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강한 인상을 줬나 보다.
"아빠차는 아직 부릉 부릉이야. 기름 먹고 다니잖아."라고 말해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라디오를 틀어서 “재밌는 사연”을 듣도록 했다. 그리고, 출발하려고 지하주차장을 힘차게 올라왔다. “부우우우우 우울ㅇ..!!” 힘을 내면서 내 차는 지하주차장을 나와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차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아내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두 가지 마음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뒤쳐져 살아야 하는가?' '우린 언제 전기차 살 수 있을까?'
그런 마음과 함께 핸들을 붙잡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책도 했다.
‘너희가 아빠를 잘못 만나서 현대사회의 기술발전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있구나.‘
‘급속도로 발전해 가는 기술의 속도와 발맞춰서 살아도 앞서가기 힘든데 거의 신기술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미안하다.’
’ 돈이 돈을 벌고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해 준다.‘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조그맣게 만들고 있었다.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두 손 말고는 마치 만화에서 보듯이 쪼그라들어서 운전석 시트에 눌려진 ‘곰돌이 젤리’ 같았다. 다행히도 그런 시간이 더 길어지기 전에 아내가 조수석 문을 열고 차를 탔다.
운전해서 다 같이 목적지로 가는 내내 내 마음은 힘들고 내 눈은 각종 신호를 따르며 안전운전은 하지만 머릿속은 계속 복잡했다. ’ 장기렌트로 전기차를 계약할까? 아이들 모두 편하게 타고 다닐 중대형 SUV를 계약할까?‘등등으로 점점 더 복잡해졌다. 이러다가 사고가 나지 싶어서 얼른 정신을 차리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아내는 그런 생각을 모르기에 ”남편! 졸리면 말해요.‘라고 나를 챙겨줬다.
조만간 고민을 구체화시켜서 아내와 대화를 해볼 예정이다.
아이들과 살면서 제일 힘든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할 때와 해주지 못하는 부모를 알기에 아이들이 떼쓰지 않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