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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사잃 프로젝트 #2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길거리에서 보는 것들 중에서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적어 봅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352


2번째 이야기를 적으면서 느끼는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물건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과거와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물건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저의 추억이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감사함도 느꼈습니다. , 비슷한 시간대를 함께 지나온 분들과는 공감도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물건이 사라져 가더라도 그것의 의미와 추억을 잘 기억해 주는 것이 제가 할 일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적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공중전화부스입니다.




공중전화부스는?

이제 점점 사라져 갑니다. 충전기를 추가로 설치해 준 덕분에 살아남은 것도 있고, 흡연부스로 변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이제 공중전화부스는 사라져 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필수였던 공중전화부스가 이제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지내는 것을 보니까 문득 많이 인용되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아마두 함바테 바 1962 유네스코 연설 중)



그 자리에 있는 공중전화부스 철거는 곧 자리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셀 수 없는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기에 그 정도의 의미부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더 이상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나 현재 전혀 필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점점 더 흉물로만 취급되겠지요. 특히,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지나면서 대중이 밀접하게 접촉하며 사용하는 것들이 공중보건상 좋은 의미를 가지기는 힘든 상황도 반영될 수 있고요.



그렇게 이제는 서서히 소멸 중인 공중전화부스를 오랜만에 만났기에 그것과 얽힌 저의 추억들을 떠올려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의 추억들 중에 몇 가지 적어 봅니다.



1. 만남

주로 길거리 건물 외벽이나 구멍가게에 설치되어 있는 파란색 보관함 속의 주황색 공중전화는 약속장소로 가는 동안 아주 유용했습니다. 전화기 머리에다가 동전 이십 원을 넣으면 “딸깍 딸깍‘소리를 내고 들어온 동전을 인식해 준다. 그런 후에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면 통화가 시작되곤 했고요. 그랬는데 어느 날 철제 부스가 생기고, 무쇠 같은 전화기가 대체하게 되었고요.



2. 역전 전화 부스

서울역 앞이나 청량리역 앞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공중전화부스를 사용하려면 긴 줄을 서야만 했었습니다. 명절날 친척집에 올라왔거나 내려가기 위해서는 역 앞에서 꼭 공중전화를 사용했습니다. 통화내용은 "지금 도착했고, 요즘은 몇 번 버스를 타야 큰집에 가는지?" 또는 “역에 도착했고요. 이제 기차 타고 내려갑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드렸었지요. 다양한 대화가 오고 가는 공중전화부스는 늘 역전에 줄지어 설치되어 있었고 꼭 줄 서서 사용해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3. 전화 부스 앞사람.

줄 서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들어간 부스 안에서 냄새가 날 때면 많이 힘들어하던 어린 시절도 있었습니다. 냄새난다고 포기하면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참고 통화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통화하면서 부스 안에서 담배도 피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그런 상황이 매우 힘들기도 했고 이해가 안 되기도 했었습니다. 부스 내의 냄새도 감당하기도 힘들었지만 송수화기에 잔뜩 배어있는 담배의 진한 향취는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있었습니다.



4. 비 올 때 부스는 피난처

비가 많이 오는 장마 때나 갑작스러운 소낙비에는 근처 공중전화부스는 참 좋은 피난처였습니다. 잠시 들어가서 비를 피하면서 다시 걸을 수 있는 타이밍을 찾기도 했고요. 밀면 접히면서 열리고 닫으면 다시 펴지는 부스 문도 참 재밌었습니다.



5. 부스의 색깔이 바뀌다니.

일제히 색깔이 바뀌었을 때는 신선하기도 했지만 내심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기계와 기계가 보관되는 장소라는 선입관에 회색 부스는 참 멋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민트색으로 도색되거나 교체된 것들을 보면서 ‘아! 별로다. 기계로써의 의미를 잃어버렸네! “라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저만의 느낌이었습니다.



6. 군대 때 탯줄처럼..

군대 가서는 허락된 시간에만 계급순으로 부모님께 전화할 수 있었습니다. 차례를 기다리고 기다려서 전화카드를 사용해서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공중전화 잔액을 수없이 되뇌며 기다리기도 했었습니다. 막상 자기 차례가 되어서 전화카드를 넣었는데 카드가 에러 날 때면 알고 있던 금액이 사용될 수 없게 되면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릅니다. 군대라는 테두리에서 살고 있으면서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공중전화, 그것은 아기가 영양분을 공급받는 유일한 통로인 탯줄 같았습니다. 그렇게 군대 시절에 공중전화로 위로받으면서 제대할 수 있었습니다.



7. 얼마나 간절했으면

영하 20도가 넘어갈 때면 버튼이 제대로 눌러지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통화가 간절할 때면 라이터로 녹인다며 버튼을 이리저리 불로 그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전자판이 녹아서 사용불가가 되거나 버튼이 녹는 일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몰라서 한 행동들도 많았습니다. 저에게 알려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요.



8. 삐삐를 사용하기 위해

허리에 차거나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삐삐가 “삐삐삐”하거나 “잉~잉~잉”하면서 진동이 울립니다. 문자판에 뜬 "8282" 숫자 때문에 얼른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갔었다. 남겨져 있는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기도 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동통신시대를 열어준 삐삐를 사용하면서 이제 공중전화가 자리를 잃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삐삐와 병행해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공중전화의 건재함에 놀라던 때도 있었습니다.


9. 휴대전화

휴대전화를 처음 사용하면서 발신과 수신에 따라 요금제가 달랐던 때가 있었다. 전화요금 많이 나간다고 PCS폰으로는 받기만 하고 전화를 걸 때는 공중전화로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수신이 잘 안 될 때는 여전히 공중전화를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여전히 공중전화가 함께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10. 점점 휴대전화기만

집 전화기를 사용하다가 휴대폰이 본격 정착되면서 점점 전화부스에 갈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걸어 다니며 통화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장난치면서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간첩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배터리방전돼서 휴대폰 사용이 안될 때만 공중전화를 찾아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점점 공중전화부스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1. 더불어서 사라지는 것들

더불어서 사라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전화번호부과 개인 전화번호수첩(미니)입니다. 백과사전 크기와 두께랑 비슷한 전화번호부는 가게전화번호들과 개인이름과 집전화번호가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공중전화부스에 필수품처럼 매달려 있었고요. 때로는 찢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회색빛 종이가 보들보들하고 얇았던 것이 종이 접기에 참 좋기도 했었습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전화번호들을 적어 놓은 개인 미니수첩들을 항상 열어서 확인하고는 했었습니다. 꼼꼼히 이름 또는 회사명 전화번호, 팩스번호들을 적어놓은 미니수첩들은 상당히 유용했었습니다. 그랬지만 공중전화부스가 사라지면서 전화번호부와 미니전화번호수첩들이 덩달아 사라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소소하고 풋풋한 기억과 추억이 묻어 있는 공중전화부스

더불어서 함께 공존했던 전화번호부

미니 전화번호수첩


아직도 두 눈에 선명합니다. 생각해 보니 공중전화부스와 얽힌 저의 추억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참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역삼동에서 만났던 공중전화부스였습니다. 공중전화부스와 얽힌 저의 추억도 생각보다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며 얻은 추억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공중전화부스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프리카 속담 속 노인의 죽음과도 비교할만하다고 생각하기도 한 것입니다.



맘 한구석으로는 공중전화부스가 명맥을 유지해 주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희망사항이긴 합니다.



기사를 참조해 보니 확실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긴 합니다. 1999년 15만 대였다가 2022년 기준 3만 4천대로 줄었고 유지하는 이유는 무선통신망이 단절되는 재난시대 대비라고 합니다. 유지비도 연간 3백억 원이라고 합니다. -출처: 2021.9월 /kbs ~추억의 공중전화/ 옥유정 기자 기사 참조

사용량이 줄어서 철거했고 남은 것들 유지비용이 숫자로써 엄청나니까 이제 줄여야만 하는 대상이 되는 게 현실이네요.



이런 추억 돌아보기와 작은 소망을 품게 해 준 역삼동 공중전화부스와 부스를 관리하는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함께 읽으며 추억을 공감해 주신 분들께도 미리 감사드립니다.



--#2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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