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삶
고개를 숙이면서 제 자신에게 "이불 킥"합니다. 이유는 무심하게 보낸 시간들 때문입니다.
횡단보도 신호가 끝났는데 여전히 걷고 있는 어르신,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서 한참을 고통 겪는 어른,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휴대폰을 눌러대는 아이들과 비교될 만큼 하나하나 짚어가며 누르는 어른들을 마주치면 그냥 무심히 흘려보냈습니다. 소위 '남일'로 치부하면서 말입니다.
"왜 그럴까?" "어떤 마음일까?"라는 생각은 안했고요. 다만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면서 "마음의 공감"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남일이면서 아직 내게 닥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노년기의 삶에 대해서 배울수록 무심코 지나친 상황들이 하나둘씩 되새김질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겪을 일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사레들리다.
그냥 물 한컵 마시던 어른이 갑자기 "컥컥"하면서 얼굴이 뻘개질정도로 기침을 연거푸 하는 모습을 종종 접합니다. 도울 방법을 찾으면서 옆으로 얼른 다가서는 정도였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었나 봐!"
"xxx xx xxx xx xxxx xxx!"
몇 마디 내뱉고는 다시 물을 마시는 것을 이어나갑니다. 나이가 먹으면 저렇게 되는구나라며 그저 "힘드시겠어요."라고만 했었다. 그런 상황을 겪는 어른의 마음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노년기의 삶을 배우고나니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른들의 '사레들리는 상황'은 특정 질환이 없더라도 나이가 들면 입안 근육의 힘이 떨어지고요. 음식이 들어가면 기도를 막아주고 식도로 음식이 넘어가도록 이끄는 근육들의 자연스러운 타이밍이 안 맞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제 나이를 먹었나 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꾸 생기니까 서글퍼!! "
그제야 어른이 내뱉은 말이 전부 생각나기 시작하면서 "서글퍼"라는 말이 가슴에 짠하게 스며듭니다. 이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게 남아서 마냥 '서글퍼'한다고 될 일만은 아니라고 하셨다.그리고, 서서히 인정중이라고도 하셨다. 그 말들이 모조리 생각나면서 제 마음에 서글픔이 가득 찼었습니다. "그렇겠구나..."
은행 모바일 뱅킹
어른들도 모바일 뱅킹업무를 하시고 능수능란하게 하시는 분들도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 하시는 분들과 제법 큰 금액을 하게 될 경우는 심각한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혹여나 잘못해서 이체실수를 할까 봐 긴장하신다고 하셨다.
"잘못 누르면 엉뚱한 대로 큰 금액이 이체될까 봐 진땀 난다."
그런데 어른들이 모바일 뱅킹으로 진행하는 금액은 사실 2~3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그 금액이 소액이고 함부로 여길 금액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잘못 눌러서 소중하게 여기는 돈이 다른 곳으로 이체되면 '일이 더 복잡해지니까' 잔뜩 긴장하고 거듭 확인하며 누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체가 잘못되었을 때 콜센터에 전화 걸어야 하고 상담을 위해 안내멘트에 따라 누르다가 실수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상담원이 연결되기까지 또 기다려야 하고 통화가 되어도 설명을 못 알아듣거나 설명을 잘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근처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서 설명을 해야 한다. 해당 사항이 회수가 가능한지 아닌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어른들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정신 못 차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진땀을 흘려서라도 신중하게 모바일 뱅킹 버튼을 하나 하나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어른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매일같이 신문물이 밀려서 코 앞으로 달려드는 세상이다. 공부를 아무리 잘했고 아무리 명석한 인재였다고 해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웬만큼 따라가다가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타이밍이 올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좌절감은 얼마나 크며 어떻게 감내하며 지나가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노인 일자리
65세 이상 노인일자리 관리 보조할 때였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나누면서 상생하자는 취지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행하시는 어르신들은 일자리가 매우 소중하며 보람있다고 하셨고요. 시간 맞춰서 가야할 곳이 있고, 일이라고 지정해 준 것을 수행하면 돈까지 받을 수 있고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서 매일 살 맛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쓰레기를 줍고 횡단보도 안내를 하며 경로당을 방문해서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들을 통해 여전히 사회의 일원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도 하셨고요.
그런 일자리가 진행되면서 조금 친해지면 몇몇 분들이 당신들의 속마음을 얘기해 주실 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술담배 끊어요. 나처럼 매월 쓰레기봉투만 한 약봉지 받으러 다니지 않으려면.."
그 어르신은 한때 일중심으로 살면서 좋은 평가와 풍성한 포상을 통해 돈을 모으겠다고 열심히 참석한 술자리 탓에 노후에 가방대신 봉지만 들고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노인일자리에는 쓰레기봉투, 병원 가면 약봉지, 할멈 시장 가면 반찬 봉지만 들고 다닌다고 하셨고요. 그중에 약봉지가 제일 싫다고 하시면서 젊은 시절 몸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 제일 후회라고 하셨습니다. 깊은 공감은 되지 않았지만 도움 될 얘기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나는 왜 아등바등 살았을까? 아이들과 대화 많이 하고 살아요. 후회가 돼!"
다른 어르신의 얘기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때여서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했던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지면서 그때 어르신이 해주신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일중심으로 살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집에다 갖다주는 것만 했다. 여유가 생기고 나서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했는데 실패했고요.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아빠와 접점이 없었기에 노후에는 '둥지밖 외로운 새'로 자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런 얘기들이 가슴 깊숙이 짠~하게 와닿습니다. 말씀해 주셨던 어르신들도 그렇게 노후를 보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주어진 '오늘'과 '내일'을 살아내느라 바빴을 겁니다. 물론 가정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었고요. 뒤늦게 매일 하게되는 후회가 한스러워서 젊은 사람들을 보면 '꼭' 말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기들이 한참 어린 저에게 당신처럼 살지 말라고 "후회 섞인 조언"들을 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케케묵은 당신의 얘기를 바쁜데도 들어줘서 고맙다고 사탕을 쥐어 주시거나 책상에 올려놓고 가셨습니다. 물론 거의 "인삼캔디"나 "목캔디"였습니다. 그분들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나눔'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들이 전부 공감하고 이해가 됩니다. 또, 그런 말들이 잘 반영된 삶을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과 삶에 대해 적으면서 '가정의 회복'을 위해 노력중인 남자입니다.
요 근래 노년의 삶에 대해 배우다 보니 또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하기 시작합니다. 간간히 가정 외에서 느껴지는 것들도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토대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도 되볼까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를 위해 진행되는 각계각층의 '세대통합교육 & 모임'이 노인일자리만큼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1세대(노년)와 3세대(자녀)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2세대(부모)가 잘해줘야 가정과 사회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매뉴얼' 또는 동영상을 참조하듯이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주옥같은 글을 쓰시면서 '삶을 이해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드시는 분들도 존경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더 바람직한 '더불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같고요.
출처: 사진: Unsplash의Markus Wink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