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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무슨 일 해요?.. 아빠

신비로운 아빠.


아기가 아이가 되면서 질문에 따라 생각이 많아지는 아빠이다. 그런데, 아이 질문에 답을 해주다 보니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눈에 보이게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들은 나를 눈에 보이지 않게 키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한다.




Q & A 가 즐거운 아빠


아이가 말문이 트이더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 어.. 어..ㅁ......ㅁ"했던 아기의 질문에 매번 감동이 밀려오고 뭐든지 답해주고 싶었다.


"저건 모.. 아?"

"응. 별, 달"


"이거 거거.. 머거... 돼?"

"안돼에..... 떨어진 거 먹으면.. GG"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조건 답해주는 'Hero'였다. 황금투구를 쓰고 세상에서 제일 높은 빌딩 꼭대기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회사 일하면서 힘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Q & A를 얼버무리는 아빠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질문의 양과 질이 달라지면서 점점 버거워졌다.  

"아빠 저번처럼 부산 가면 안 돼? 호텔 조식 먹고 바다보고. 웅?"

"으응... 지금은 좀 힘들어. 나중에 할까 봐...."


"아빠 스페인 축구 보려면 비행기값 얼마해요? "

"응, 그때그때 달라. 그리고, 경유 횟수나 항공사에 따라 많이 달라."


"아빠는 무슨 공부했죠? 그래서, 어디서 일하고 있죠?"

"의류학, 의상공부했지. 그리고 회사에서 기획하고 판매계획 세우는 거 했지~"


그렇게 대답해주고 말아 버린다. 아빠가 패션 공부했고 패션회사 일했던 것을 알고 있는 아이가 질문하는 것이다. 그다음 질문은 뻔하다.


"그럼 아빠 회사 어디야? 커? 이쁜 사람들 많아? "

" 누구 아빠는 아이돌 기획사에서 일한대. 엄청나대.."

"그렇구나.... 거기는 그렇구나."

"치....."


질문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질문을 못하게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패션회사 안 다닌다고 말하고 지금 하는 일 설명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다. 그렇게 솔직하게 설명해 주고 다른 일하는 회사에 데려가기도 했었다.



새롭게 하는 일도 솔직하게 설명해 줬다.  "여기가 아빠 자리야." " 아빠 일 좀 마무리할게. 잠시 옆에서 놀아." " 다른 사람들 것은 만지면 안돼요." 이러면서 마무리 못한 일도 하고 아이들 밥도 사주고 그랬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제는 패션 업종 일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근래에 하던 일들은 아이들을 데려가서 사무실을 보여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묻기 시작했다. 역시나 난감해지는 상황이었다.


"근데, 아빠 요즘 왜 회사에 안 데려가줘요? 아빠 일하는 회사 구경하고 싶은데..."

"그래, 맞아. 옛날에는 자주 데려갔는데.. 아빠 책상 옆에서 그림도 그리고..."

"맞아. 그러다가 아저씨들이 지나가면서 용돈도 주고.. 재밌었는데..."

"그러긴 했지. 너네 기억하는구나."


"그런데 요즘은 왜 안 해줘요?"

"아! 요즘은 쫌 그래서...... 나중에 하자."

"치이.. 맨날 나중이래. 뭘 사달라 해도 나중에, 데려가 달래해도 나중에. 맨날. 칫!"  


지식이 없어서 답을 못해준다기보다는 답을 해줘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질문이 길어지면 나는 패자가 된다. 그러면서 벌써 "Hero 아빠"자리에서 내려온 지 한참 된 느낌이다.




아직 모르겠어요.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는 간식을 먹으면서 둘러앉아서 대화한다. 아직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대화해 준다. 그럴 때면 아이들 관심사에 대해서 묻기도 한다. 첫째 아이와 대화할 때였다.


"넌 커서 뭐 하고 싶니? "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럼 지금 제일 좋아하는 건 축구하고 그림인가?"

"그렇죠. 축구할 때 제일 신나요. 제 그림은 애들이 그러는데 저만의 느낌이 있대요."

"좋네. 나중에 꼭 좋아하는 걸로 일해라. 그리고,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 도와야 한다."

"네에."


그러고는 대화는 끊긴다. 끊긴다기보다 말꼬리를 이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이제 아빠 일 얘기해 줘요. 요즘 하는 일? "
 


이라고 묻기 시작하면 해줄 말도 없고 답해줄 것이 없다. 나는 그냥 "회사를 위해 일하고 월급 받는 회사원"이니까. 언제부터인가는 딱히 설명해 줄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설명해 줘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의류학과 전공하고 11년간 의류회사일했고 경력단절 후 색다른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아빠에 대해 정의내리기가 힘들어서 롤모델이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꿈을 정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사랑하는 아내는 대학교 졸업 후 전공 관련 일을 했다. 그러다가 결혼 후 아이 셋 양육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력단절되었다. 6년간 출산 3번 하느라 일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관련된 일로 파트타임하면서 빚 갚기를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에 대해서는 헷갈릴 일이 없다.  


아이들이 "엄마처럼 일해야지~"는 하지만, "아빠 했던 일해야지~"라고는 안 한다. 무엇을 모델링할지도 애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후회 중!


아이들이 크면서 주변 친구들의 환경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한다.


"누구 아빠는 축구 감독이래요. 그래서 걔도 운동한대요."

"누구 아빠는 사장님이래요. 그래서, 맨날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고 그런대요."

"누구 아빠는 기술 자래요. 그래서 매번 지방에 있어서 주말에만 온대요. 대신하고 싶은 거 다해준대요."


친구들이  자기 아빠처럼 살겠다는 아이들도 있고 엄마처럼 살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 지금 무슨 일 하죠?"라고 물으면 "아빠는 외계인"처럼 "아빠는 회사원. 그냥 일해!"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면 아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하도 하는 게 많아서 헷갈려. 아빠는 다 먹고 다 한단 말이야." "응. 그렇구나~"라고 답하면서 자리를 슬쩍 피했다.



생각해 보면 첫째 아들에게 아빠 따라 일해보겠다고 해볼만큼 보여준 사회 속의 아빠로 '롤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두 딸들에게는 바람직한 '좋은 남자'의 모델도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끔 혼자서 후회하기도 한다.

'어른들이 하면 잘할 것 같다는 교육 쪽 일을 할걸.'

'의류업종에 있으면서 영업부 일하자고 할 때 할걸, 해외지사 배우면서 하겠다고 보내달라고 해볼걸'


수만 번 후회를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 살아가는 하루를 잘 살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아빠로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오늘의 숙제같다.




뭘 하고 살았고, 뭘 하며 살고 있는가?


가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따져보면 계획된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민 가려 했는데 실패, 딸아들아들 낳으려 했는데 아들 딸딸이 되었다. 평생 의류업종일하려고 했는데 11년 만에 종료 등등 혼자 계획을 했거나 아내와 협의를 하면서 준비를 했든 간에 계획된 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결혼 13년 차가 되었다. 많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그 분야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만의 색깔을 잃어버린 지 13년째이다.



그래서, 브런치 소개글에 나는 6가지 직업을 전전하는 남자라고 적었다. 6가지 일을 해봤다는 자랑이 아니다.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 치열한 생존 일념에 집중한다고 아내와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들을 돌아보지 못한 남자의 반성과 후회를 적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하고 있다.

"뭘 하며 살았는가?"

"뭘 하고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해온 것을 말할 수는 있지만 해줄 말이 없다. 그저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오듯이 매월 급여를 물어오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노고를 알아달라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투정 부린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뭐 했냐라고 묻는다면 "그저 앞만 봤네요. 하나도 몰랐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속상해서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을 막살고 내 맘대로 살다가 어느 날 뒤돌아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보인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생계를 책임지고 앞장서며 살았는데 팥 없는 팥빙수처럼 알맹이 없는 시간으로 흘려보낸 것 같습니다.


1. 겸허히 받아들이기

아내가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버티느라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말할 때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듯 결혼 13년 차 아내가 그동안의 속상함과 힘들었던 것을 말하면서 대반격의 시간을 가지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2. 곱게 '사과'하기

아이들이 그동안 아빠가 '큰사람'같아서 아무 말 못 하고 눈물 흘리며 혼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세상을 점점 알아가면서 아빠가 아무 일 아닌데도 심하게 혼낸 것에 대한 상처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곱게 '사과'하고 있습니다.



3. 함께 나누기

의류분야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 자부심 가지고 일할 때 외에는 늘 자격지심으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아빠의 일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빠가 거쳐온 일들을 '프라이빗 잡월드'처럼 한 번쯤 설명해 줄 예정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일하면서 잃지 않았던 '아빠의 열정'을 소개해주고, 앞으로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면서 남을 돕는 자가 되도록   도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의류에 대한 꿈, 앞으로의 세계비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함께 대화하면서 적극적으로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외형적으로는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이지만, 보이지 않게 아이 셋이 저를 성숙시키고 있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아빠가 이 세상에 적었으면 합니다.  아직까지도 아내와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외면하고 있는 아빠가 없었으면 합니다. 나중에 깨닫고 나면 마음에 깊게 패인 상처들이 느껴지면서 후회가 덧붙여진 눈물이 멈추질 않게 되니까요.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자. 열심히 살아온 모습밖에 없더라도!
 -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생각


출처: unsplash의 lance re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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