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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뒷모습이 말했다.. 아빠

명함컬렉터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거나 분위기가 좋은 곳이면 꼭 '명함'을 챙겼다.

명함을 챙기는 이유는 다른 분들과 식사할 경우와 회식대비 그리고 가족과 함께 다시 오기 위해서였다.


그런 습관과 관련된 해프닝을 적다 보니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에 공감하게 되었다. 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는지 적어 봅니다.

 


업무상 외부에서 식사하다가 괜찮았던 음식점의 '명함'을 챙겨서  가족들과 재방문을 하게 되면 가장으로서 매우 뿌듯하다. 또, 반대로 가족과 함께 식사 후 괜찮았던 음식점의 '명함'을 챙겨서 다른 가족에게 추천하거나 재방문을 하게 될 경우도 뿌듯하다.



그렇게 챙겨 온 명함들은 음식점 명함첩으로 따로 관리를 했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리멤버'어플을 통해 통성명한 타업체분들의 명함과 함께 만족한 식당 명함을 관리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오는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이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신기한 취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바로 명함 챙기기이다.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 먼저!! 아빠처럼 아이들이 명함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아빠가 계산하고 '명함'을 챙기고 나오면, 아이 셋이 조르르 달려가서 '명함'을 하나씩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명함'에 손이 닿지 않는 막내는 손을 내밀어서 '명함'을 달라고도 했었다. 그 모습에 귀엽다며 음식점 사장님께서 '명함'과 함께 디저트 '사탕'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는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얼른 '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뱉어 버렸다. 병원에서 주는 '비타민사탕'인 줄 알았는데 맵고 매운 '박하사탕'인 것이었다.



집에 와서는 아이들에게 "왜 명함을 챙기냐고?"물었더니 '아빠가 챙겨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챙겨 온 명함을 펼쳐놓고 개수나 색깔들을 말하면서 카드게임하듯이 노는 것이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이들이 챙겨 온 '빨간색, 노란색의 현란한 명함들'이었다. 아이들이 글씨를 모를 때였는데 현란한 명함들 대부분이 음식점 명함이 아니라, '노래방이나 대리운전'명함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했었다.



2. 슬슬!! 아빠처럼 이유를 가지고 명함을 챙기기 시작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글씨를 알기 시작하니까 '명함'을 진지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오고 싶지 않거나 비싸고 불친절해서 다시 오고 싶지 않아서 '명함'을 챙기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명함'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이거나 '재밌는 분위기'의 음식점이라서 아빠에게 또 오자고 말하려고 '명함'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제 슬슬 목적을 가지고 '명함'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그저 놀랐다. 아빠가 '명함'을 챙기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없는데 아이들 스스로가 목적을 가지고 챙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목적이 이끄는 삶'인 것이다.



3. 아빠처럼 다른 이유 때문에 명함을 챙기는 아이도 생겼다. 

나는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다른 업체분들과 점심식사하기 위해서 또는 가족을 데려와서 좋은 음식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음식점 '명함'을 챙긴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명함'은 각각의 아이덴티티와 목적을 나타내기 위해 '1초 마케팅-첫인상 전쟁터'의 집약체이다. 그러다 보니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깔과 폰트로 구성되어 있다. 상상초월의 디자인 결정체일 때도 있다. 의외로 평범한 듯한데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느껴지는 '손맛'에  잊지 못하게 만드는 명함도 있다. 그런 것들을 마치 '예술품'을 수집하듯이 챙겨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챙긴 '명함'들은 별도로 관리했다. 재방문하려는 음식점 카테고리가 아니라, 색다르고 기발한 세상을 맛보게 해 준 아이디어 카테고리로 분류해서 관리하는 것이다.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주은 '알록달록 유리알'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방문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어느 매장의 명함을 아이가 챙겨 온 것이었다. "방문하지도 않았는데 왜 챙겼냐?"라는 질문에 아이가 말하길 "색도 기발하고 모양도 특이해서 챙겨 왔어요. 재밌어서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전율이 느껴지며 오싹했다. 아이들이 못 볼 때 내 생각에 기발한 명함들은 속으로 엄청 신나는 마음으로 잽싸게 챙기곤 했었다. 그런데, 그와중에 내 모습을 본 건지  아이의 취향인지 몰라도 언제부터인가 기발한 명함들은  챙기면서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명함 챙기는 아빠'의 뒤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명함을 챙기다가 점점 자기의 목적에 맞게 명함을 챙기고 재방문을 제안하거나 자기만의 명함 컬렉션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등을 보면서 스스로 자라는구나!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명함을 챙기는 삼 남매'를 보면서 많이 놀라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내가 무심코 한 행동 하나하나 아이들이 모두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의 목적과 잘잘못을 떠나서

"아빠가 하는 행동이니까 그냥 따라 했다."


라는 사실이 저를 까무러칠 만큼 놀라게 했습니다. "내 행동을 그냥 따라 했다고?"사실에 충격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행동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 못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했고 그 결과 상당히 심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모범을 보이는 아빠가 아님도 다시금 알게 되었고요. 예를 들면,



운전하면서 예의 없는 차에 대해서 욕은 안 했지만 놀란 마음에 늘 중얼거렸더니, 아이들이 함부로 운전하는 차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을 들었고요.

아이들 머리에 불똥이 튈뻔했는데도 길거리 흡연하는 사람을 향해 화를 냈더니, 아이들은 길거리 흡연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쁜 아저씨, 나쁜 언니"라면서 큰소리로 말하기도 해서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아무렇게나 던진 담배꽁초나 커피캔을 보면서 "쯧쯧쯧"하고 지나갔더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아저씨를 보면서 "와! 나쁘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걸 느끼면서 손을 잡아챈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잘 성장하길 바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옳은 것에 대해서 말하곤 했고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수많은 말을 하는 저의 앞모습보다는 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세상을 보고 배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수시로 언급되는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모범이 되어야 성품 좋게 자란 자녀가 또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경각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길안내하는 아빠보다는 행동으로 좋은 영향력 끼치는 아빠가 되도록 더 노력하려고 합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Zac Meadowcr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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