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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33

큰사람

늘 똑같은 길을 걸어도 '새로운 깨알'을 만납니다. 색다른 길을 걷다보면 '색다른 깨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목적지를 위해 길을 걷을때나 목적지없이 터덜터덜 걸을때라도 '깨알'들을 만나기때문에 참 즐겁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무생물같은 물건 '깨알'들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출근길에 지나가며 눈이 마주쳤을때 인사를 건넨 인연으로 늘 아침마다 스몰토크를 이어가는 인연도 생깁니다. 하루에 1번은 커피를 마시러 가던가 손님을 만나면 하루에 2번도 가는 까페 사장님이 눈여겨보시고 인사를 먼저 건네주십니다. 금세 친해져서 차 한잔 사려고 들어가면 새로운 메뉴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시기도 합니다. 만들어 놓은 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말못하는 생명체 깨알'부터 '물건 깨알'까지 사이에 '뜻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인연의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길 걷기는 매력적이긴 합니다. 



점점 늘어나는 '깨알재미'들을 여전히 나누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깨알'들을 나누어 봅니다. 




#1. 작품세계..

출근하기 위해 골목길을 돌다가 보게된 빌라 앞 주차장이 점점 화단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주차장 바닥에 박혀 있는 돌들을 빼고 대신 꽃들을 심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볼때마다 조금씩 배치가 달라지고 다른 꽃들이 심어져있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건물주인가? 세입자인가? 세입자가 함부로 할 수는 없을텐대'라면서 지나가다가 어느날, 실질 작업자를 만났습니다. 그 빌라 건물주 할머니였습니다. 맨 꼭대기층에 살고 있으시고 옥상에 꽃, 화분, 다양한 것들을 올려놓고 보았었는데 많은 사람들과 보고 싶어서 하나둘씩 가지고 내려오는중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름대로의 규칙과 의미를 가지고 화분, 장난감, 돌, 인형들을 배치하고 또 위치를 바꾸고 매일 바꾸셨습니다. 그러다가 비 예보가 있는 날이면 미리 비닐들을 씌워놓기도 하시고요. 사람들이 함부로 만지거나 담배를 버리면 "꽁초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공고문을 붙이기도 하시고요. 그분의 정성 가득 '주차장 화단'을 볼때면 피식 웃고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매일 그런 작품을 공짜로 볼 수 있는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과 꾸준함에서 만들어진 작품같은 아름다운 공간을 저는 그저 공짜로 볼 수 있으니까요. 매일 아침 만나게되면 '감사'와 '굿모닝'인사를 건네며 웃고 지나다니는 유쾌한 시작이었습니다. 




#2. 황금..

어느 골목 빌라 주차장앞에 황금덩어리가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웃으면서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그 돌덩어리는 나름대로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 돌덩어리를 노랗게 칠한 분의 정성이 잘 드러날 만큼 꼼꼼히 색칠해 놓으셨고요. 그냥 돌덩어리였다면 주차하면서 마구 밟았을 텐데 노랗게 칠해놨더니 잘 보이는 덕분에 쉽게 밟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기둥과 물받이도 보호하고 있기도 했고요. 여러가지를 가져다놓고 물받이와 기둥을 보호하셨는데 드디어 '황금 돌덩어리'가 최적의 보호물이 된 것인가 봅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황금 덩어리'입니다. 뜬금없는 금광을 만난 추적자의 기분으로 웃으면서 지나갔습니다. 




#3. 생각의 의자..

가게 앞 의자가 참 이뻤습니다. 순백색으로 칠해 놓은 덕분에 입장을 기다리는 신부의 수줍고 순결한 미소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느낌과 함께 느껴지는 것은 의자 모양이 주는 익숙함입니다. 그냥 폭신한 쿠션의자이거나 예술성 있는 의자가 아니라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불편한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잠시 앉아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은 의자였습니다. 저 의자에 앉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저 의자에 앉아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처럼 튼튼하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잘못 앉으면 맨날 엉덩이에 가시가 배기던 그 의자. 초록색 엉덩이판과 책상 상판의 초록색이 세트로 구성된 책걸상 세트. 



그런 추억이 있어서 더 눈길이 갔는가 봅니다. 그런 데다가 순백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니 회색빛 도시 속에 그야말로 도드라지는 물건이었습니다. 다시 앉아보고싶은 충동도 생겨서 얼른 자리를 떠났습니다. 




#4. 마시멜로..

아이들과 시골길을 걸을 때면 가을 들녘에 보이는 뭉탱이들입니다. 저것을 알게 된 건 친척어른댁에 갔더니 육우에게 먹이려고 잔뜩 쌓아놓으신 것을 보면서 그 쓰임새를 알게 되었습니다.


1개당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업이 쉽지 않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저 덩어리들을 만날 때면 아이들에게 농담을 합니다. "저 안에 마시멜로가 엄청 많이 들었다고..." "건빵 먹다가 목멜까 봐 함께 먹으라는 별사탕처럼 지푸라기 먹다가 별사탕처럼 먹으라고 있는 마시멜로"라고요. 그 농담을 처음에는 아이들이 진짜로 믿고 진지하게 들었는데 나이를 조금 먹으니까  "아빠! 이제 저걸로 뻥 좀 치지 마요!" 합니다.



논위에 놔둔 덩어리를 '곤포 사일리지'라고 하던데, 제 눈에는 항상 대형 마시멜로입니다. 논 위에 있어서 더 재밌고요.




#5. 알록달록..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다가 어느 골목 안쪽에 알록달록한 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반 수거통인데 참 보기 좋았습니다. 무채색 계열이나 톤다운된 수거통보다 훨씬 예쁘고 재밌었습니다.



골목어귀에 또는 아파트 어느 구석에 그저 아무렇지 않은 쓰레기통들일지라도 알록달록 예쁜 칼라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회색빛 도시에 아름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볼때마다 기분좋아합니다. 



그냥 평범한 보도블록일지라도 칼라풀한 블록이 중간중간에 있다면 그것도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알록달록 수거통을 만났을 때는 "유레카"라고 외치던 아르키데메스처럼 쾌재를 부르기도 합니다. 도시 속에서 '포켓몬'을 잡는 증강현실게임이 하나도 부럽지 않은 순간입니다.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보는 것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늘 감사할 수밖에 없고요. 만난 '깨알'들에 대해 가슴 찡하거나 감동을 주는 글재주는 아직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깨알'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투박한 감정과 느낌을 함께 나눌 브런치가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 순간들이 있기에, 아내와의 회복과 자녀와의 회복을 꿈꾸며 꾸준한 노력을 이어갈 힘도 생기는가 봅니다.




먹고 살기위한 몸부림, 복잡한 생각 속에서 사람 향기 나는 생각을 더 많이 하려는 노력들을 이겨내다보면 하루가 흘러 갑니다. 그런 순간과 순간사이에 '깨알들'을 만날 때면 그저 웃게 되고 마냥 즐거워집니다. 



토요일 저의 '깨알 프로젝트'를 읽으시는 분들이 느끼셨듯이 이미 아무렇지않게 지나친 물건들이 대다수일겁니다. 너무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어쩔 수 없이 무심하게 지나갔던 것들이실 겁니다. 제가 지나가다가 용케 발견하고 찍어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거아닐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는 찍어서 올리면서 수차례 수정하는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발에 밟히고 차인 것들이 사실 '보석'이었다고 알리는 것같습니다. 어쩔때는 아내와의 회복을 위한 고군분투기, 아이들과의 똑같은 눈높이로 지내는 어른이 아빠의 생존기보다도 '깨알 프로젝트'를 더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 관심과 격려가 '깨알 프로젝트'를 꾸준히 지속하게 만드느 것입니다. 늘 공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깨알 프로젝트'를 적으면서도 '깨알'덕분에 뭔가 허전한 가는 가슴에 유쾌한 웃음덩어리를 담게 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깨알프로젝트 #33 --끝 --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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