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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32

큰사람

 길을 걸으며 여전히 많은 것을 보고 지냅니다. 새롭게 만난 "깨알" 덕분에 복잡하고 고민스러운 머리가 주기적으로 리셋되는 경험도 합니다. 그래서,  "깨알"들을 "내 머릿속의 지우개"같다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길을 걷다가 만난 '깨알'들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깨알'들을 만날 때마다 저만의 시각으로 느낀 것을 얼른 스케치하다 보니 동반하는 사람들은 늘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러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이런 상황 속에서 "깨알 재미"를 혼자 느끼는 것이 특별한 '묘미'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착각이기도 하지만 잠시동안 '상상과 즐거움'을 즐기는 귀한 시간입니다. 불과 1~5분 사이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함께 한 '깨알'들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1. 군병들..

오전작업을 마치고 점심식사하러 가신 작업자분들이 아주 멋지게 작업도구를 정렬해 놓으신 것을 봤습니다. 


저는 다리 위를 걷고 있었는데 본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강변아래로 내려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잠시 웃는 날이었습니다. 



정렬된 물뿌리개를 보면서 저의 군대시절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몇 년 전(?)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군대생활 내내 '오와 열을 맞춰라!(가로 세로 맞추기)'를 끊임없이 듣고 맞추느라 시간모두를 보낸 것 같습니다. 기술병이었기에 휴식시간에는 장비와 총기를 '오와 열'맞춰 놓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선임한테 배운 대로 후임에게 전수했고요. 어느 날인가 작업장 주변을 지나가시던 상급부대 간부님이 '격한 칭찬'을 해주신 덕에 일과시간에 PX(꿈의 군대 매점)를 사용하는 특별지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는 그것만으로도 큰 '칭찬'이었습니다.


정렬된 물뿌리개를 만나면서 그런 추억도 떠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파랑 물뿌리개를 사용하는 곳도 이제 점점 적어지기도 합니다. 나중에 "잊사잃 프로젝트 (잊히고 사라지고 잃어버려야 하는 물건들에 대한 추억소환)"에서 다루기도 해볼까 싶습니다. 






#2. 틈새 식물..

부실한 점심을 먹었음에도 행복한 느낌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머리 정수리에 느껴지는 따스한 햇살, 등에 느껴지는 햇빛의 따뜻함을 걷는 내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행복하다 보니 보는 것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건물 반지하창문 앞 '식물'을 본 날입니다.



큰 건물벽에 붙어서 이끼들과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같기도 하고, '아마추어와 하승진선수'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틈새 식물'의 생명력에 감탄도 했고요. 골목길의 바닥과 건물과의 마이크로 한 틈새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건물이나 반지하창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소원을 빌어 줬습니다. 주차하는 차바퀴에 밟히지도 말고, 쓸모없는 잡초로 치부되어 주인어른의 손길에 붙잡혀 뽑히지 않도록 소원해 줬습니다. 



길을 걷다가 '틈새 식물'을 볼 때면 한번 더 눈이 갑니다. 그가 자리 잡고 활짝 피다가 사그라드는 시간들을 나도 지켜봐 주고 있다는 의미로 사진 찍고 글을 적기도 하고요. 각자의 생명이 모두 소중하듯이 '틈새 식물'도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은 하루였습니다.





#3. 오토바이..

모르는 골목을 돌고 걷는다는 것은 미로를 찾아가는 여정 같습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에 만나는 '깨알'들은 게임 중에 확보하는 '특별 아이템'같기도 합니다. 



길가에 주차된 빨강 스쿠터입니다. 보기만 해도 빨강 바디가 주는 느낌은 '무한으로 달리며 타기만 해도 즐거운 느낌'을 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걷고 있는 저처럼 강렬한 햇살을 받고 있다 보니 신발장에서 새로 꺼낸 '빨강 하이힐'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스쿠터 자체로도 존재감이 상당했지만 이 날따라 더 눈에 선명하게 와닿았습니다. "어! 왜지?" 하면서 잠시 지켜봤습니다. 그랬더니 



빨강 스쿠터와 대비되는 파란색 보관함이 바로 뒤에 있고요. 스쿠터 앞에 노랑 실선이 그어져 있었고요. 바로 앞은 깜장 아스팔트 도로가 인접해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골목길이었으면 적당한 존재감이었을 텐데 주변의 선명한 색깔의 구조물들이 빨강 스쿠터를 더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관계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리더이고 누군가는 서포터가 됩니다. 그 반대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대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강 스쿠터. 한 번쯤 타고 신나게 댕겨보고 싶은 오후였습니다. 





4. 종탑..

도심 속에서 만나는 종탑은 매우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저에게 종탑이라는 것은 어릴 때 부모님 따라다니면서 봤던 작은 교회의 새벽종탑, 별도로 나와 있는 독립부대 내 작은 교회, 군생활중 가끔 파견가게되면 접하던 시골교회 종탑들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몇 가지 기억들을 다시 소환해 주는 도시 한복판의 종탑이 무척 반갑웠습니다.



'몇 시 몇 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때'를 알려주던 종탑, 그런 종탑 소리에 사람들이 짜증 내면서 화를 내지도 않았던 시절을 겪었다는 것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종탑이 울리는 시간에는 청소차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를 틀고 다니면서 함께 새벽을 깨웠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정겨운 추억이 묻어나는 종탑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종탑 덕분에 재미보다는 '추억'을 소환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매끈한 스피커타워에서 나오는 일렉트로닉 EDM보다 여기저기 녹슨 종탑에서 울리는 '뎅.. 데 이에 엥....'소리가 문득 그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5. 알림..

출근길이었을 겁니다. 저는 매일 루틴처럼 같은 길을 다니지 않습니다. 시간이 5~10분 정도 여유가 있다면 다다른 길을 찾아서 다니는 편입니다. 그래야 새로움을 얻고 똑같은 하루도 다르게 시작하니까요. 이 날도 그렇게 새로운 골목을 걷다가 한 가게를 만났습니다. 가게 창문에 종이가 붙어 있길래 또, '폐점'인가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가보았습니다. 내용은 전혀 의외였습니다. 


 '사장님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쉽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에이. 진짜 아프시겠어?'라는 생각보다는 '아! 얼마나 힘드셨길래. 몸이 힘드신가? 어제 매출이 많이 나오고 늦으셨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염려도 해봤습니다. 모두가 힘들 때 버티느라 힘든데 몸까지 아프다면 얼마나 힘드실까라고요. 



우리는 코로나시간을 버텼고 코로나 이후를 견디느라 힘듭니다. 힘들게 버틴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여전히 힘든 우리 모두를 생각하면서 올해는 모두가 덜 힘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가던 길을 이어서 갔습니다.




여전히 길을 걸으면서 '깨알'들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깨알'들과 함께하다 보니 밋밋할 수도 있는 하루가 풍성해집니다. 그런 느낌들을 꾸준히 적어 올리고 있는 것도 감사로 느껴집니다. 





'깨알'을 통해 배우는 게 많습니다. 여전히 즐겁고요. 제가 길을 걸으면서 보물처럼 여기는 '깨알'들은 인위적인 것도 있지만 버려지거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저는 점점 더 '아픔' '슬픔' '기쁨' '감사' '즐거움'들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일 감사한 것은 '공감'의 마음 그릇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존중하게 되고요.



글감을 찾기 위해서 억지로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보일 때마다 찍으면서 다양한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길 위해서 '노다지'를 캐는 것 같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포켓몬'잡는 것보다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



가끔 일상의 '노다지'를 적다 보면 아쉬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깨알 재미'를 어떻게 하면 다른 나라 가서 느낄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해보면서 '노다지'같은 '깨알'적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색다른 다른 나라 깨알'들을 수집해 와서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길을 걷다가 또는 앉아 있다가 혹은 잠시 하늘이나 다른 곳을 보다가 우연히 만난 것을 통한 '느낌'이 진정한 '깨알'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대만에 비전트립 다녀오면서 길거리에서  '특별하고 신기한 것들'을 찍어왔습니다. 사진 속의 많은 것들이 기발하고 재밌기는 했지만 제가 직접 길을 직접 걷다가 느낀 것처럼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깨알만남'은 아니었습니다. 신기하고 특이했지만 뭔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직접 다른 나라 '깨알'들을 수집해보고 싶어 지는가 봅니다. 



또는, 길거리에서 만난 '깨알'들을 통해 느낀 것들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깨알'들이 사물들인데 인생을 알게 해 주는 깨달음도 주다 보니 더 확장된 콘텐츠를 만들어볼까라는 망상도 해보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이 '깨알'덕분에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낀 대로 찍고 적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럴 수 있도록 여기까지 읽어주시고 '격려'와 '공감'해주심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의 깨알 프로젝트 # 32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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