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골목길도 걷고 대로변을 걷기도 합니다. 대로변을 걸으면서 반들반들한 것들보다는 골목을 걸으면서 만나는 제각각의 '깨알'들이 제일 재밌기는 합니다. 다리가 아프지 않거나 발바닥이 아프지 않아서 적당한 속도로 걷다가 보이는 '깨알'들을 포착하는 재미가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여기저기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느끼는 저의 생각들을 나누어 봅니다. 대단한 것이 아닌 '깨알'들이 잠시라도 '프훗'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잠깐 재미 주고 사라진 풍선껌같이 성공적입니다.
#1. 오토바이 그녀..
길거리 배달 오토바이들은 다들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되고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더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모습을 존중하고 볼 때마다 '꼭 챙겨봐 줘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챙겨 보는 편입니다.
앞뒤로 인형이 꼭 붙어있으면서 하얀 오토바이 바디는 어디론지 달려갈 수 있고 낭만을 지니고 있는 운전자가 타고 다닌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한때 광안리와 해운대를 오고 가며 XX버거를 주방에서 조리, 조립하고 치킨을 열심히 튀기다가 배달도 나가던 때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햄버거를 만드는 것도 즐겁고, 잠시 배달을 나가면 급하게 버거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광안리와 해운대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며 오토바이 안장 위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은 지금 생각해도 신납니다. 그런 느낌까지 주는 '깨알'이었습니다.
#2. 깡통..
녹이 슬고 라벨이 떨어지지 않고 여기저기 구겨진 깡통이 아니었습니다. 외부도 깨끗하고 내부도 깨끗했습니다. 그렇지만 깡통은 오고 가는 또는 들락날락하는 손님들을 위해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거기 놓여있겠지요.
도자기처럼 깨끗한 깡통을 보면서 저는 '무소유'를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텅 빈 속을 가진 깡통인데 왠지 모르게 세련되다고 느껴지고 그 자체만으로도 고급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해 보이지 않고요. 그저 무념무상으로 길거리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전봇대와 함께 있는 탓인지 순결한 깡통이 더 고급져 보였습니다.
#3. 시계..
제가 만난 '깨알'중에 제가 아끼는 '깨알'입니다. 잘 간직해 뒀다가 정말 쓰고 싶을 때 꺼내려고 잘 보관해 두었었습니다. 지금쯤 꺼내서 쓰고 싶었습니다. 대단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산책로에 있는 흔들 그네의자입니다. 그 한쪽 귀퉁이에 시계가 붙어 있었고요. 그것을 보면서 저는 얼른 허벅지를 '탁'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매우 애지중지하고 싶어 졌고요.
오며 가며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것보다 허벅지를 '탁' 친 이유는 상상력이 발동해서입니다. 그네 의자에 앉아서 앞으로 나아가면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뒤로 갈수록 시간이 뒤로 가는 '타임머신'의 비밀을 숨긴 그네의자라면 어떨까?
그렇게 상상을 해보니까 무심코 앉아서 흔들흔들 앉아있다가 일어설 때쯤이면 무릎이 싱싱한 느낌이고 뭔가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이상함을 느낄 어른,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면서 의자에 앉아서 요구르트를 마시다가 일어났는데 교복이 작아졌고 키가 커져서 천정에 머리가 '콩'부딪힌 숙녀가 되어 놀라는 여중생, 혼자서 상상하다가 '피식'웃으면서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상상력이 재밌어서 나중에 기분 좋을 때 공개하고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상상력도 샘 속게 해주는 '깨알'이 소중합니다.
#4. 빗자루..
저는 '사회복지사'였습니다. 물론 지금 현역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인가 '요양보호사'가 궁금해서 학원을 찾아서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일이 끝나서 대중교통으로 허겁지겁 와서 문턱을 드나들 때면 항상 보는 것이 '미니 빗자루'였습니다.
앙증맞으면서도 실사용하기보다는 '복조리'처럼 복을 쓸어 담아달라는 의미로 달아놓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락날락거렸습니다. 커버로 덮여있는 손뜨개의 색감이 늘 따스하게 느껴지고요. 미니 빗자루를 매달아 놓은 레이스 끈도 참 익숙해서 좋았습니다.
의류회사 다닐 때 맨날 책상 위에는 레이스 테이프가 놓여있고, 여차하면 동대문에 가서 샘플염색을 하고 심각한 경우에는 벌크다발을 차에 실어가서 밤늦게까지 염색해서 공장 가져다줬던 기억까지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미니빗자루를 보면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 덕분에 밤까지 듣는 강의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고요. 간간히 생각나는 업무추억들을 떠올리며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혼자 '풉!'하고 웃었습니다. 미니빗자루가 학원에는 더 좋은 일 만들어주면 좋겠고, 오고 가는 수강생들에게는 항상 좋은 일을 생각하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5. 버튼..
버스 안에서 멍한 시선으로 앉아 있다가 눈이 번쩍 뜨이면서 혼자서 '크크크'하고 웃는 날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 집에 가느라 지쳐서 텅 빈 유리몸에 노오랑 주스가 촤아악 들이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내려요!라고 말해주는 하차버튼과 위급시 사용하는 비상망치가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붙어 있는 위치를 보면서 상상과 생각을 함께 해봤습니다.
내리려면 얼른 눌러야 하는 하차버튼
혹여 창문을 깨야하면 얼른 떼내야 하는 비상망치
항상 사용해야 하는 하차버튼
가능하면 사용할 일 없었으면 하는 비상망치
앙증맞아서 늘 시선 끄는 게 즐거운 하차버튼
시선 끌지만 달갑지 않은 비상망치
둘이 붙어있지만 그들의 기분은 다르다.
언제나 불러주길 바라는 하차버튼
가능하면 찾지 말아 달라는 비상망치
묘하게 붙어있는 하차버튼과 비상망치를 보면서 웃고, 상상해보다 보니 내릴 시간이었습니다. 멍한 시선으로 버스 뒷자리를 간신히 찾아서 앉아 있었는데 잠시라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청량감을 느끼는 늦은 밤 퇴근길이었습니다. 감사하고요.
그렇습니다. 늘 '깨알'들은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입니다. 그 존재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데 공짜라서 더 즐겁습니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애써서 찾으러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깨알'들을 여전히 느끼고 다닐 수 있음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리는 '깨알'들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들입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바빠서 무심코 지나치신 것들도 있고요.
어쩌면 제가 길을 걷다가 혼자 웃으며 찍고 잠깐의 상상하느라 서 있는 동안 지나치셨을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알고보면 모르는 사이라서 무심히 스쳐가기도 하니까요. 저는 주로 서울에서 그러고 다닙니다. 혹여라도 제 '깨알 프로젝트'를 보시는 분들 중에 그런 제 모습을 보신다면 아는 척해주세요. 커피 한잔 하시면서 깨알재미를 현장에서 느끼는 맛도 재미있을것같습니다.
오늘도 제가 길에서 만난 '깨알'들을 나누어드렸습니다. 이렇게 '깨알'들을 올리며 글을 적는 순간은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말씀드려 봅니다. 깨알 프로젝트의 부제가 항상 '큰사람'인 이유를요. 아이들이 붙인 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