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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35

큰사람

길!

수많은 길 중에서도 특히 골목길 걷는 것을 더 즐기는 편입니다. 반들거리는 대로보다는 오밀조밀하고 쓰레기도 있으면서 강아지도 어슬렁거리는 골목길이 더 정겹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혼자 걷다 보면 골목길을 정복한 느낌이기도 하고요. 골목길을 휘감아도는 바람을 느낄 때면 바람을 몰고 다니는 착각을 느끼기도 하면서 상상력이 발동하기도 합니다.  



그런 골목길을 걸으면서 공짜로 보고 느끼는 '깨알'들을 말할 때면 가끔 혼자서 '잘난 척'하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그런 겸손함을 잊지 않으면서 만나서 상상하면서 즐거웠던 '깨알'들을 나누어 봅니다. 

 



#1. 스티로폼..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면서 돈이 점점 말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속상한 날이었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간단히 먹고 걸으면서 그러다가 아프면 어쩔 거냐며 진짜로 걱정하는 아내 말을 꼽씹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걷다가 전봇대에 기대어진 수입 물품 충전재 더미를 봤습니다. 

 


'저 스티로폼 조각들이 엄청 부드럽고 말랑하면서 잊히지 않을 맛을 지닌 초콜릿이라면! 버린 사람에겐 쓰레기였지만 내 눈에는 엄청난 초콜릿이니까 팔면 수억이다. 수억. 금세 부자된다.' 

'남들은 모르고 버렸지만 모두 오래된 동전이라면 수억이다. 수억'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피식' 웃으면서 길을 걸었습니다. 도저히 현실을 이겨내지 못할 때는 가끔 상상을 통해 상황을 이겨내는 재미를 군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짜장면을 먹고 싶은데 절대 먹을 수 없는 상황일 때, 잡지에서 가위로 오려낸 짜장면 사진을 관물대에 붙여놓고 입맛을 다시곤 했습니다. 진짜 대리만족이지요. 그러다가 휴가, 외박만 나가면 참았던 것을 먼저 하고 시작했고요. 저는 큰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빚을 갚고 가족이 먹을 만큼만 되면 나머지는 '나눔'을 하고 싶습니다. 좋은 차를 타기보다는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2. 호빵기계..

관심 가는 자격을 취득하려고 퇴근하고 숨 가쁘게 다니면서 지나다니던 골목길에서 '호빵기계'를 만났습니다. 사용대기 중인지 사용 후 버리는 건지 모르지만 만난 자체로 기뻤습니다. 아직 우리와 함께 있으니까요.   



그 기쁨을 뒤로하고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기계 모양이 네모로 변했습니다. 동그랗고 원통모양이면서 빨강고깔을 쓰고 있던 큼직한 호빵기께는 이제 보기 힘듭니다. 안에 각 층의 선반을 돌리면서 먹고 싶은 호빵을 꺼내는 추억도 사라져 갑니다. 큼직한 호빵기계는 마치 '보물 자판기'같이 보이는 날도 있었습니다.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아직은 이 물건이 '잊지잃 프로젝트(잊히거나 사라지거나 잃어버리는 물건에 대한 생각)'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곁에서 겨울이면 찾아오고 있으니 안심이 됩니다. 여전히 겨울마다 추억과 함께 우리와 함께 하니까요. 호빵기계가 늘 우리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요즘 '밤양갱'이 다시 이슈가 되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3. 빈자리..

노란 페인트로 전체를 도색해 놓은 건물을 지나칠 때였습니다. 기둥벽면에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인상 깊어서 찍어 봤습니다.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고 빼는 반지는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반지가 있던 손가락의 '허연 자리'는 계절이 바뀌어야만 사라지기 때문에 힘들다고들 합니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건물 벽의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강력 본드로 붙여 놓았나 봅니다.  저의 상상력으로는 본드로 붙여놓았고 원래 건물색과 지금 건물색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 같았습니다. 사랑의 기억이 아니니까 슬픈 자국이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무턱대는 상상을 해봅니다. '자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저 위치를 누르면 문이 열리면서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닌가? 거인이 사용하는 열쇠자국이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걸어본 오후였습니다. 




#4. 반하다..

간판을 보면서 기발한 문구에 '와우'하면서 길을 멈추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제 폐점하는 매장이었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문구를 만든 분의 아이디어에도 손뼉 치고 그 문구를 보며 드나들었을 수많은 손님들을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반한다'는 것은 참 좋은 감정 같습니다. 반해서 연인이 되고 연인이 부부가 되고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반한 사람과 또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됩니다. 물론 부부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한다'는 감정이 좋은 역할을 해서 가정과 사회가 늘 순환된다는 면에서 '좋은 감정'같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이 소개해 준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 셋과 살고 있습니다.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평생 핀잔을 듣습니다. 결혼할 시기에 연인이 없던 사람에게 모르는 사람이 소개해준 상대방은 '하나님이 오죽 답답해서 붙여줬으니 운명이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긴 했습니다.  



지금도 말할 수 있지만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 당시 정답입니다.  결혼 14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 정답은 저는 '아내에게 엄청 반하고 깊이깊이 빠져가고 있습니다.'같이 살수록 미처 몰랐던 아내의 진가를 알아가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회나 연어를 먹다 보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빠질 것이다!'라는 주문을 걸어주는 가게 문구에 웃어본 저녁이었습니다.  



#5. 너와 나..

골목골목을 돌다가 우연히 에어컨 실외기 뒤에 놓인 헬멧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데 저런 걸 버린 건가? 방치한 건가? 골탕 먹이려고 놔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가려다가 색다른 것이 보여서 다시 멈춰 섰습니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북한군과 유엔군의 모습 같기도 하고요. 

내가 흠모하는 여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수줍은 남자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여러 상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리'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이왕 함께 사는 세상에서 '일부러 멀리 하고 싶은 거리'보다는 '가까이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거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거리감'이 더 많아지는 세상에 '함께'하는 것이 더 즐거운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저 헬멧은 주차금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가던 길을 갔습니다. 

 


오늘의 깨알 프로젝트는 여기까지입니다. 골목들을 걸으면서 보는 것들을 적어 봤습니다. 여전히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깨알'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깨알'들을 '그 자리'에 놔둔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손길들에게도 감사하고요.  






여전히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것들을 보고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가감 없이 적어서 모든 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영광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100여 명이 신데 10000명 같은 느낌으로 늘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계획한 대로 만든 회색도시가 반들반들하다면 이끼도 끼고 쓰레기도 있는 골목이 한결 사람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넓고 좁은 차이만 있을 뿐 각자의 느낌은 거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칠고 숨 가쁜 회색도시에서 골목길은 인공호흡기의 줄 같은 느낌입니다. 골목길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심히 지나가시는 '깨알'들을 저만 느낀다고 '잘난 척'하는 느낌보다는 '저는 요런 느낌을 느꼈어요.'라면서 찬찬히 적어보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깨알'들이 아직 여전히 재밌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 '깨알'들을 느끼고 싶어서 근질근질하긴 합니다. 지금은 일상에서 느끼는 슬픔과 스트레스에 '사이다'같은 존재입니다.  '깨알'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신 것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 사람의 깨알프로젝트 # 35 - 끝 -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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