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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37

큰사람

길을 늘 걸으면서 골목길 걷기를 즐깁니다. 골목길은 사람향기가 더 많이 나고  푸근함이 많이 느껴집니다. 이른 아침 골목길과 저녁노을아래 골목길은 느낌이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반들반들한 큰길을 외면하고 골목길을 걷는 동안  발걸음은 경쾌해집니다. 무언가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이 몸을 타고 오르면서 머리가 "깨알"을 통해 설렐 준비가 됩니다.

 


이런 느낌들이 하루의 절반 또는 1/3을 채워주니까 하루를 보내는 재미가 더해지는 것같습니다. 이런 '깨알'을 만난 느낌 그대로 나눠 보겠습니다.


#1. 무게감..

주차금지를 말하고 싶어서 내어놓은 통입니다. 검은 아스팔트 파란 통이 튀는 느낌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파란 통 뒤로 보이는 그림자가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파란 통이 자기 역할을 위해 자리 잡고 있는 동안 느껴지는 존재감 내지는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자의 크기가 돋보였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우리 뒤로  다양한 고민거리들이 우리 모습보다 몇 배나  큰 것과 비슷해보였습니다. 그 그림자의 크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햇살이었습니다. 그 무게감을 느끼게도 하지만 오늘도 그것들을 잘 이겨내라고 힘을 주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골목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2. 담쟁이덩굴..

오토바이도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굳게 닫힌 하늘색 철문이 보였습니다. 물론 고양이, 강아지들은 틈새로 자유롭게 드나들겠지요. 철문의 긴장감과 경직됨을 누그러뜨려주는 담쟁이덩굴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닫혀있지만 자유분방한 담쟁이덩굴이 철문을 덮어버린 모습이 마치 파마한 앞머리가 이마를 흘러 타고 내리지만 그냥 앉아서 묵묵히 할 일하는 만화 속 경비아저씨 같았습니다.



생기도 없고 감촉도 없이 메마른 철덩어리 문이지만 녹색의 담쟁이덩굴이 살며시 감싼 덕분에 감옥 같지 않으며, 사람향기 나는 빌라를 보호해 주는 문으로 더 돋보이게 된 것 같았습니다.



#3. 주차금지..

그 어떤 외부차량도 들어오지 말라는 강력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절대로 무시할 수 없도록 선명한 색깔과 강직한 글씨체가 "반드시 주차금지"를 지키라는 명령같이 느껴졌습니다.



"주차금지"문구를 보면서 매우 냉정하다고 느끼면서   "주차금지"안내문 앞에 입 벌린 음식물쓰레기통이 갑자기 시선을 끌었습니다.



엄하게!! 단호하게!! 주차금지!!라고 말하는 앞에서 "이러면 좀 어때~ 저러면 좀 어때~ 별일 아닌데 멀?!..."이라면서 푸훗 웃어주는 구멍가게 아줌마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옛날 학교앞 구멍가게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아줌마가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덕분인지  "나의 마음도 조금 더 여유롭게!!"라면서 다짐도 했었습니다.



#4. 화분 하나..

가게 앞 낮은 담장 앞에 놓인 화분하나가 너무 예뻐서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에 담고 말았습니다.

그 화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어떤 꽃인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벽돌바닥과 회칠한 바닥이 정갈하게 마주 잡은 그 공간에 울긋불긋 꽃잎들이 자기만의 자태로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길을 멈춘 것입니다.



바닥과 담장이 화려했다면 평범한 화분의 그 꽃잎들이 도드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았겠지요. 단아하고 정갈한 바닥과 담장이 울긋불긋 꽃잎들을 극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줬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손흥민처럼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는 이강인처럼 어시스트가 주력이고 가끔 골을 넣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나는 골을 넣는 사람이 아니라 골을 막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때로는 골잔치가 열리는 축구장 청소부일수도 있고요. 그렇듯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존재하는 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춤사위..

춤을 전수하는 보전회의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는동안  등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지니까 얼굴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살포시 치맛자락을 붙잡고 천천히 돌면서 춤을 추는 고전무용이 생각났고요. 리듬에 맞춰 돌 때마다 흔들리는 옷자락에 비치는 조명의 은은함도 느껴졌습니다. 춤을 추는 무용수의 입가에 살짝 띈 미소와 보조개도 떠올랐고요. '간판'의 문구처럼 아름다움이 슬며시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나를 안아주는데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살처럼 내 몸을 감싸주면서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있는 느낌까지 들게 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춤을 보전하고 전수한다는 것은 고루하고 폐쇄적이며 도제식 느낌이라서 약간은 올드한 느낌이 먼저 와닿는 게 사실입니다. 이 '간판'을 접하고 간판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느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잠시 문구에  빠져서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을 동원했더니 최고의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보전학회 간판을 보면서 글자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글자가 모여 쓰인 한 문장 또는 한 단어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뜬금없는 '깨알'을 만나면서 늘 상상을 하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지만 마지막 사진의 간판을 보면서 글자, 단어, 문장, 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깨닫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심지어 그 보람을 세미나 또는 교육이 아니라 골목길 빌딩벽에 붙은 금속 간판 때문에 느낀 것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그런 글들을 쓰고 있는 작가님들, 출간작가님들 모두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AI 시스템을 통해 우리의 감성을 완벽하게 가시화시켜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훌륭한 창작물을 대신 만들어주기도하니까 감성창작자의 입지는 좁아진다고 합니다.  AI로 만든 음악에 상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오감으로 느낀 감성을 0.0000001% 놓치는 것 없이 하기 위해서 작업자의 섬세한 명령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완벽히 구현하는 날이 오면 사람의 창작물과 AI를 통한 창작물 중에 어떤 것이 더 인간적인지? 아름다운지?를 본격 저울질하는 날도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숨 쉬는 생명력이 내뿜는 인간만의 감정이 충분히 스민 글들을 많이 창작하고 읽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37 -- 끝 --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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