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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프로젝트 #38

큰사람

길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한결같이 재미와 감사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깨알"들을 늘 예찬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들이 주는 재미는 제게 힘들 때 가끔 마시는 비타 500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혼자 길을 걸을 때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길을 걷다가도 보게 되는 '깨알'들은 흘려보내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 또! 뭔가를 봤구나!"라면서 웃습니다. 어떤 아이는 '꼭' 찍은 것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보고 나면 "오호~~ 재밌네. 아빠!"라면서 자기도 즐거워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깨알'들을 오늘도 저의 보물주머니 열듯이 풀어봅니다. 



#1. 믿음..

맘껏 즐긴 초록병의 즐거움에 뒤따라오는 내일의 고통이 걱정되어 작은 초록병으로 미리 속 다스리고 들어가셨겠지요? 한편으로는 내일을 걱정할 만큼 매우 행복하셨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웃었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는 꼭 골목 구석구석 어제의 즐거움을 자랑하듯 여기저기 숙취 음료수병이 버려져있습니다. 꼭 2병 내지 4병으로 짝이 있는 것입니다. 함께 즐기셨을 테니 다행입니다.  



즐거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귀가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비틀거릴 수도 있는데 숙취 음료는 거의 다소곳이 함께 놓여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내일의 숙취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다소곳이 올려놓고들 가시는가라는 상상을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2. 밑동..

어느 골목 빌라 앞 화단에 잘린 밑동을 보았습니다. 좁은 공간에 점점 크게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면서 지나다녔습니다. 좁은 공간에 빌라 창문들을 막으면서 자라다보면 위태로울 텐데 싶었거든요. 



어느 날 길을 지나가는데 빌라 앞이 훤한 것이었습니다. "아!! 이런!!" 너무 크게 자라다 보니 결국 밑동만 남기고 잘려나갔구나 싶었습니다. 



잘 자란 나무가 잘못인가? 애초에 거기 심은 게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겠지요.

다만 힘 좋게 푸르게 잘 자라다가 잘려나간 후 남겨진 밑동을 보면서 약간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알맞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인가 봅니다. 



#3. 대형 솥..

어느 아름다운 가게옆 구석에 커다란 무쇠솥이 놓여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현역투입이 아니라 이제 현역은퇴였습니다. 과거의 뜨거웠던 열정과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던 위용은 그대로인데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군대시절 사용되던 취사반의 무쇠솥도 생각났고요. 한때 학교 급식실 파트타임 일하면서 엄청난 양의 국이나 튀김들을 만들어내던 것도 생각나고요. 대형 무쇠솥에 대량으로 끓인 라면의 기절할만한 라면맛도 생각났습니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무쇠솥이 더 이상 쓰일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래도 여차하면 깨끗이 씻겨져서 다시 사용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원도 빌어줬습니다. 




#4. 자전거 신호등..

길거리 신호등을 보면서 너무 재밌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해외 출장을 갔을 때도 늘 신호등을 유심히 보곤 했습니다. 각 나라 신호등이 참 다양하고 소리까지 나는 것도 신기했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그저 우직하게 서 있는 사람 모습도 있고요. 몰랑몰랑하게 걷는 사람 신호등도 있고요. 색깔로만 된 신호등도 있고요. 물론 신호등이 없는 곳도 있고요. 



요 근래에는 버스전용차선용 버스그림 신호등도 재밌었습니다. 최근 더 재밌는 신호등은 자전거 신호등이었습니다. 조만간 전동 킥보드용 신호등, 전동 킥보드용 주차공간이 나오는 건 아닌지 상상도 해봤습니다. 하긴 일본에는 협소공간을 전동킥보드 주차구역으로 내주는 것도 보았습니다. 



조그만 자전거 모양이 신호등을 보면서 빙긋 웃는 동안 신호가 바뀌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5. 남자의 무릎.. 

관심 가던 요양보호사 자격증 관련 실습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잠시 식사를 하고 차 한잔을 하던 날이었고요.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카페에 소품들을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고 있다가 "와아"하는 탄성과 함께 저의 시선을 끄는 소품이 있었습니다. 하얀 무릎 아저씨입니다. 

 


오랜만에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소품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인생의 무게가 고달파서 무릎에 손을 대고 바닥을 바라보면서 슬퍼하는 모습, 분당선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잠시 쉬고 있는 모습, 소파에 앉으려고 무릎을 구부리는 남성, 머리가 어지러워서 주춤거리는 남성, 급한 볼일을 해결하려고 변기에 앉으려는 남학생, 스케이보드를 처음 타본 남자 등등 수많은 상상을 해보지만 그래도 가장 적합한 이미지는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다가 후들거리고 아픈 다리를 속상해하며 잠시 쉼을 가지는 중년남성"이었습니다. 



한때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가는 남성, 지하철 계단을 힘겹게 하나하나 올라가는 남성, 보도블록을 하나씩 세면서 가듯 천천히 걸어가는 어른들을 뵐 때면 "이해"가 안되기도 했습니다. 20~60대 중반까지 근무하는 공간에서 늘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다음 동작을 하는 나이 드신 분들과 젊은 직원들과의 업무진행속도관련한 마찰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근력이 약해지면서 모든 게 쉽지 않다는 어른들 말씀을 듣다 보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서 우리가 상황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이 든 분들이 세월을 드러내는 신체변화를 필연이라고 인정하면서 묵묵히 견뎌내는 시간들에 대한 마음의 상실감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이가 되어서야 "아! 이래서 그랬구나!~"라고 공감하면서 씁쓸해하겠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것은 자연과 사람 모습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수많은 "깨알"들이 다양한 것들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단한 '진리'는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여전히 한결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자체로 재밌고 감사합니다. 



오늘 만나본 "깨알"들도 역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 줬습니다. 특히 마지막 "하얀 무릎 아저씨"가 특히 그랬습니다. 그 소품을 보면서 다양한 상상을 하다가 마시는 커피 한잔의 맛은 특별한 것 같았습니다. 마침 그날, 요양보호사 실습을 하면서 다양한 어르신들을 접했는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서 멋지게 일하셨다는 분들, 여전히 외모가 정정하신 분들, 잠깐씩 정신이 돌아오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인생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아는가?"는 마음속의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사려 깊지 못하는 생각을 옳은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저에게 가끔은 "깨알"들이 재미보다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흘려보내면 아무것도 아닌 "깨알"들이 거의 인스턴트커피 한잔 같은데 어쩌다 보면 '드립 커피'처럼 깊고 은은한 맛을 느끼게 해 줄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적어보았습니다. 길거리의 쓸모없는 것들, 버려진 것들과 버려지도록 내놓은 물건들을 통해 느끼는 '깨알재미'가 사라지지 않는 한 '깨알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 38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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