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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39

큰사람

한결같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오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수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공감하는 것처럼 길을 걸으면서 "깨알"들이 느끼게 해주는 것들로 생각을 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감사로 느껴집니다.


점점 다양한 꽃들이 눈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도 합니다. 모든 것들이 봄날의 시작과 함께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느라 갑자기 분주해진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길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찬찬히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깨알"덕분에 더 다양한 생각을 하고 사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1. 깨진 유리창

골목을 돌고 돌다가 보게 된 유리새시문은 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깨진 유리를 붙여 놓은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더 재밌었던 것은 붙여놓은 테이프 때문입니다.


깨진 유리문을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인 덕분에 다시 깨지지는 않겠지만 깨졌다는 것을 절대로 모를 수 없게 해 놓았네요. 왠지 계속 눈길이 가게 됩니다.

압권은 단연 테이프 그 자체입니다. 투명테이프가 아니라 '알루미늄 테이프'였습니다. 깨진 자국이 더 부각되는 효과도 있게 되었지요. 한때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유용하게 쓰이는 테이프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냄비가 오래돼서 구멍 나거나 깨지면 이 테이프로 붙여주기만 하면 만능으로 고쳐지기도 했고요.   교실 난로의 연통 이음새는 꼭 알루미늄 테이프로 붙여줘야 가스가 새지 않을 수 있었지요.


무심코 걷다가 깨진 유리새시문 덕분에 재미와 옛 추억까지 되살려보는 시간이어서 출근길이 더 즐거웠습니다.




#2. 연통..

역시 골목을 걸어 다닐 맛이 납니다. 골목을 돌다가 불쑥 나온 연통을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듯한 비주얼입니다. 마치 기관총 같기도 하고요. 뜬금없는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달아놓은 '명찰'을 읽어 보았습니다. '연통 조심'


누군가에게는 발밑에 여차하면 차일 것 같은 불편한 물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늑한 보금자리에 꼭 필요한 존재일 것입니다. 다만 그 위치가 애매해서 조심해 달라고 부탁 부탁하는 것 같았습니다.

워낙에 큰 '명찰'을 붙여놓아서 절대로 부딪히거나 망가뜨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 염려되는 것은 밤에 주차하거나 담배 피우러 구석을 찾아서 앉다가 부딪히거나 델까 봐 염려가 되긴 했습니다.


출근길에 무릎높이에 툭 튀어나온 연통과 '명찰'을 보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길을 이어서 걸었던 아침이었습니다.


#3. 돼지 저금통..

점심을 먹고 따스한 햇살, 여차하면 뜨거울 수도 있는 한낮의 태양을 뒤로하고 걷다가 멈췄습니다. 무더기로 묶여 있는 알록달록 저금통을 보는 순간,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 저 물건이 요즘 잘 팔릴까?' '잊사잃 프로젝트에 쓸까?'라고 하다가 깨알 프로젝트에 쓰기로 했습니다.

잊사잃 프로젝트 -> 길거리에서 본 '깨알'중에 잊히고 사라지고 잃어버리고 있는 깨알들과 그에 얽힌 추억을 적는 저의 프로젝트입니다.


저 자신도 동전과 지폐를 거의 만지는 일이 없다고 적적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살게요. 먹어요.. 아빠"--편에서 현실을 언급한 적이 있고요. 대부분이 이제는 동전과 지폐를 돼지저금통에 모아두었다가 더 이상 들지 못할 만큼이 되면 가여운 돼지의 배를 갈라서 동전과 지폐를 꺼내서 목돈을 만지는 기쁨을 누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마치 그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정도로 첨단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벽에 걸린 돼지저금통 더미가 오랜만에 반갑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돼지저금통을 설명해줘야 하는 때가 오고 말았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우리 곁에 있어다오. 돼지저금통.


#4. 제군들..

종종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혹은 골목을 지나치다가 딜리버리 드라이버들의 감각이 살아있는 오토바이를 보게 되면 꼭 서서 감상을 합니다. 똑같은 군복이지만 다림질에 따라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듯, 똑같은 모양의 교복이지만 약간의 변형과 접기 신공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듯이 오토바이들에 부착된 소소한 액세서리들이 드라이버들의 감성을 드러내줍니다.


소소한 액세서리들의 향연은 반드시 즐겨주고 감상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 있곤 합니다. 이번에 만난 '깨알'은 '제군들'입니다. 열심히 배달을 위해 달리는 동안 뒤에서 달리는 자동차 또는 타 드라이버들에게 '깨알재미'를 건네주면서 바쁘게 일하는 동안 잠시라도 웃자고 제안하는 것 같습니다.


각자 머리에 헬멧까지 착용하고 오토바이 배달박스 뒤에 달려 있는 모습들도 참 귀엽습니다. 드라이버가 달리는 동안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앉아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5. 수류탄..

나름대로 별거 아니지만 꼭 쓰고 싶을 때 꺼내려고 아껴 둔 '깨알'입니다. 수류탄 모양의 그림이 암시하듯이 아이들과 저 안의 것들을 입에 넣으면 '팍 팍' 터지는 그 느낌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길에 버려진 포장지를 보면서 혼자서 '푸흣'하고 웃었습니다. 늦은 결혼을 했는데 아이 셋을 연달아 놓다 보니 나이가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빠처럼 아이들 눈높이로 먹고 놀고 웃고 다닙니다.


이 '깨알'을 아껴 둔 이유는 아이들과 재밌게 먹고 걸었던 생각을 떠올리는 재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요즘 가장 중요한 일들이 가장 안 풀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터질 것도 같고 마음이 속상함만이 가득하기도 합니다. 속상해서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가슴속을 대변해 주듯이 평온한 낙엽 가득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캔디 포장지였습니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일이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고도 하고요. 문이 닫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지혜의 말들을 되새기면서 나름대로 답답한 요즘 현실에 캔디 포장지 사진을 꺼내놓고 잠시 웃었습니다. 분노로 터지거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생각보다 풀리는 않는 일상이 답답하고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마음과 비슷해서 보는 동안 위로가 되었습니다.





'깨알'들은 항상 재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만나고, 예상 못한 재미를 주면서 하루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일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하늘을 보고 땅을 바라보고 주변을 돌아봐도 막막함밖에 느껴지지 않을 때!! 생각지 못한 '깨알'이 그래도 웃게 해 줍니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재미를 건네주는 '깨알'을 즐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혼자만 보고 느끼면 기쁨과 즐거움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 봐서 매주 열심히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항상 서툰 글을 읽고도 공감과 격려해 주시는 모든 분들이 있어서 때로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같이 느껴져서 훈훈하고요. 함께 공감하고 싶어서 서툴게 쓴 글을 수도 없이 고쳐서 발행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일상 속에서 손톱만 한 깨알, 머리통만 한 깨알(?)들을 나누는 주말은 항상 즐겁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도 '푸흣'하고 1~2초 웃으며 읽으실 때도 있으신 것 같아서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번 깨알 프로젝트를 쓰는 동안 참 행복합니다. 감사함을 듬뿍 느낍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큰사람의 깨알 프로젝트 #39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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